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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 정신으로… 해병대 파이팅!

기사승인 2021.08.17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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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코로나19로 국민들이 힘들어 하는 현재, “할 수 있다!” 해병대정신을 5천만 국민에게 전하며 “다시 한 번 힘내자!” 용기를 주기 위해 44년 전 파나마 특설링에서 4전5기의 신화를 창조한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을 만나 그날의 생생한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특별취재 : 신동설 발행인】

본지를 들고 파이팅을 외치는 홍수환 회장 <사진=박흥배 보도국장>

■ 해병대를 사랑하는 홍수환
“제가 육군수도경비사 소속 복싱선수가 아니었으면 해병대에 갔을 것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해병대 팔각모에 반했고 해병대 영화를 많이 보면서 ‘나는 해병대에 가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무적해병신문에서 취재를 해주셔서 감사하고 해병대전우 여러분들이 국가안보를 위해 앞장서 계시기에 마음이 든든합니다”고 본지 취재에 흔쾌히 응한 홍수환 회장에게 감사를 전한다.

■ “수환아 한 번은 이기고 그만둬라” 엄마의 격려
홍수환은 1950년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남양 洪씨 가문의 4남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동네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자랐다.
하지만 주먹은 세지 않았다. 복싱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수환이 손을 잡고 자주 복싱 경기장에 갔었다.
중2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좋아했던 복싱을 고2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학생선수권대회와 아마추어복싱대회 등에 출전, 연속 패하다가 다섯 번째에야 겨우 비기는 경기를 했다.
평소 아들의 복싱을 못마땅해하시던 엄마는 “수환아 한 번은 이기고 그만둬라”며 아들을 위로했다.

■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 “그래, 수환아, 대한국민 만세다!”
수경사 복싱선수로 입대, 일병 때인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WBA 세계밴텀급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로부터 WBA 세계 2위였던 홍수환에게 1차 방어전 경기 초청장이 날아왔다.
챔피언 아놀드는 한국의 홍수환을 알지 못했고 홍수환도 아놀드를 알지 못했었다.
거기다 그 당시는 육군 일병이 해외에 가기가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복싱을 좋아했기 때문에 특별 배려로 비행기 표를 살 수 있었다.
도쿄-스리랑카-요하네스버그 등 비행기를 여섯 번이나 갈아타는 험난한 여정을 뚫고 현지에 도착했다.
서로가 정보를 몰랐기에 링에 올라 1회전부터 탐색전을 벌이며 상대를 공략해야 했다.
1회전 공이 울리자 홍수환은 상대가 스트레이트를 날리지 못하게 계속 움직이며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무모한 헝그리정신의 펀치를 날린 것이 그대로 꽂혔다.
1회, 5회, 11회, 15회, 네 번이나 상대를 무릎 꿇게 했으니 승리는 당연한 것이다.
주심이 홍수환의 팔을 번쩍 들어 올리자 중계 이어폰이 홍수환의 귀에 꽂혔다.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수환아, 대한국민 만세다!”
세 시간 후인 이른 아침 6시, 학생, 직장인 등 모든 국민이 출근하는 버스와 밥상에서 중계방송을 들었다.
“대한국민 만세!”가 온 천지를 진동했다.
감동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으며 모든 국민이 흥분했다.
유신정부로 국민들의 저항을 받던 박정희 대통령은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감동의 물결 때문에 큰 위로를 받게 됐다.
홍수환이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국가원수급에 해당하는 카퍼레이드를 벌였고, 시민들은 대한국민 만세를 합창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홍수환에게 금일봉(이백만 원)을 하사했다.
그 돈은 서울 4대문 안 한옥주택 두 채 값의 거금이었다.
홍수환은 일백만 원을 권투협회에, 나머지 일백만 원은 KO패로 혼수상태에 있던 문정호 선수 치료비로 대줘 또 한 번 박수갈채를 받았다.

■ “나는 이길 수 있다” 4전5기의 신화를 쓰다
1977년, 파나마 핵토르 카라스키야 선수와 붙을 때였다.
카라스키야는 11전 11승의 무시무시한 선수였다.
그것도 모두 KO로 이겼으니 ‘지옥에서 온 악마’ 별명이 붙었다.
링에 오른 홍수환 역시 신장과 팔 길이가 자신보다 월등한 그의 앞에서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1회에는 근근이 버티다 2회에 들어 연타를 맞고 네 번이나 쓰러졌다.
“나가떨어지자 정신이 혼미해지고 링 줄과 바닥이 움직이는 것 같은 몽롱한 상태가 되더군요” 하며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휘청거리며 간신히 자리에 앉은 홍수환에게 트레이너는 “3라운드만 견뎌라”며 주문했다.
아마도 4라운드가 되면 수건을 던질 기세였다. 홍수환은 이를 악물었다.
‘나는 이길 수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날리자.’
이를 악물고 팔을 휘두르며 한 방을 날린 것이 적시타였다.
‘이때다!’ 생각하고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몇 초 전까지도 펄펄 날던 지옥에서 온 악마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쫓아가 어퍼컷으로 턱을 냅다 질렀다. 그 악마는 로프를 등친 채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이젠 됐다”고 다시 강한 왼손 보디블로를 날렸다.
한 발 두 발 휘청하더니 악마는 더 이상 일어나질 못했다.
이 모습이야말로 파나마 국민들에게는 ‘경사가 났다가 초상집이 된 것’이고 우리나라 국민은 ‘초상이 났는가 했더니 경사가 난 결과’가 되었다.
그때의 4전5기 신화는 한국 권투사(史)에서 반백 년이 되도록 누구도 고쳐 쓰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1974년 챔피언에 오른 홍수환이 귀국 직후 어머니와 함께 환영 인사 하는 모습.
박정희 대통령이 공항으로 차를 보내 국가원수급 카퍼레이드 가진 홍수환.

“복싱은 인생과 같다. 경기에 졌다고 주저앉는 게 아니라 이겨야 할 경기를 위해 다시 일어서야 한다. 질 것 같은 경기에서 이기고 이길 것 같은 경기에서 상대에게 무너지는 것이 복싱이다. 복싱할 때 힘든 상대는 나보다 팔이 길고 키가 큰 선수가 아니다. 꼬리가 없는 악어를 봤는가? 수달이 악어의 힘을 뺀 후 악어 꼬리를 잘라 먹었기 때문이다.” -홍수환 어록-

□ 홍수환 회장의 발자취
은퇴장로(동생 홍수철 목사가 시무하는 구리시 예빛교회)
서울 중앙고 졸업, 인천대학교 무도과 졸
1971 한국 밴텀급챔피언
1972 동양태평양 밴텀급챔피언
1974 남아공 세계복싱연맹(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아놀드 테일러 선수에게 15회 판정승
1977 파나마 슈퍼밴텀급 초대타이들전 2회 다운된 후 3회 KO승
1980 염동균과 10회전 무승부 마지막 경기
2008 한국권투협회 회장
2012 한국권투위원회 위원장
현재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세계밴텀급 챔피언에 되어 돌아온 홍수환 선수에게 대통령장을 달아주고 있다(1974.7.18.)
선수 시절 상대에게 강력한 펀치를 날리는 홍수환(右)의 경기 모습(1976.)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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