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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참전 노병 이찬석(청룡,해병184) 한마디!

기사승인 2024.04.04  14: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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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화가 나는 일은…,

고엽제 피해로 방광암 수술 2차례, 현재 항암 치료 중 우리를 향해 ‘양민학살자’라고 하니 분통이 터진다. 【박흥배 보도국장】

이찬석 노병은 청년으로 성장한 1966년까지 경북 봉화에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산판일을 도왔던 청년이었다. 성장 과정이 산으로만 뛰어 다녔으니 그의 민첩한 행동과 건강만 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자연히 또래들이나 지역에서 힘 깨나 쓰는 청년으로 대장역할을 했다. 그가 1966년 12월 해병 184기로 입대하여 진해 앞바다가 30년 만에 결빙된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작대기 하나의 무적해병대로 태어났다. 그리곤 월남전에 파병, 청룡 용사가 되어 베트남 밀림을 날아다닐 정도로 민첩하게 용트림을 하곤 귀국했다. 제대 후 싸움이면 싸움, 힘이면 힘, 등 누구에 게도 밀리지 않는 해병대였지 만 40대가 되자 고목나무에 해충이 낀다는 말처럼 그에게 서서히 당뇨, 혈압 등이 찾아오더니 급기야 방광암 수술을 두번 이나 해야 하는 병들어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픔보다 우리 국군들에게 양민학살자라고 하는 것에 더욱 분개하여 필자를 만나 피를 토하듯 울분을 토했다. 이 같음은 그에게만이 아니라 30만 월남전참전자 누구나 갖는 공통적 울화이고 역사적 음해일 것이다. 
이찬석 노병은 말한다!
 이찬석 전우, 방광암 수술 2차례, 현재 항암 치료 중 청룡부대로 파병되어 1대대 3중대로 배속 받아 츄라이-호이안으로 이동하면서 건기 때 비행기에서 살포하는 고엽제를 쫓아다니며 빗물인줄 알고 철모 벗고 상의 벗어 던지면서 흠뻑 맞았다. 그리고 얼굴 씻고 자고나면 하룻밤 사이에 산이 벌겋게 고엽제로 말라서 변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고엽제인줄 몰랐다. 고엽제란 말도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 고엽제를 작전 나갈 때 마다 맞았다. 
제대 30년 정도 후인 90년대가 되니까 피부가 가려워지기 시작하고 혈당, 당뇨로 전이되서 지금은 방광암으로 까지와 두번 수술을 했다. 이 같은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그런데, 더화가 나는 일은 우리들에게 양민학살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은 엉터리다. 내가 월남전 전투 당시 김연상 여단장 때 방송요원이  L-19타고 다니면서 마이크로 “양민은 나오라!, 양민은 나오라!”고 계속 방송한 후 작전 개시에 들어가는데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온다, 그러면 반드시 청룡대원 한명이 죽는다. 그러다보니 전우가 죽는 마당에 움직이는 물체는 모두 사격 대상이 된다. 이미 수차례 양민은 나오라고 했으니 남은 것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조준하는 지도무지 알 수 없고 그 조준 대상에 내가 포함 될 수 있기 때문에 살기 위해 움직이는 물체는 무조건 사격해야 한다. 심지어 “부시럭” 소리 내는 닭까지도 순간적으로 사격한다. 베트콩은 아이, 여자 등 아군이 동정해서 그냥 놔둘만한 사람들을 역으로 이용해 베트콩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부지기수다. 적들은 양민을 이용해 우리를 죽이거나 양민이 죽게 만든다. 그리곤 우리를 향해 ‘양민학살자’라고 하니 분통이 터진다.    【발행 인 신동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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