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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교수의 테마기행- 전쟁의 흔적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0.10.13  11: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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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 부대 ‘코만도’ 수많은 군사유적 즐비한 영국!

▲ 신종태조선대 군사학과 초빙교수

스코트랜드는 영국 본토 섬의 1/3을 차지하며 북쪽에 위치한다. 남쪽은 잉글랜드, 북서쪽은 대서양, 동쪽은 북해와 접해 있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영국의 직접 통치에 저항하다가 1707년에 두 왕국은 통합되었다. 1800년대 산업혁명 영향으로 조선·철강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인구가 대폭 증가하였다.
특히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 및 군수품 생산을 감당하는 든든한 후방병참기지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북부에는 ‘하이 랜드(High Land)’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산악지대와 해저괴물이 산다는 네시호도 있다.
대도시 에딘버러·글라스고와 주변 작은 도시에는 영토갈등, 왕위계승, 세계전쟁에 얽힌 성곽·기념비·군사유적 등이 도처에 널려있다.

■ 천년고도 에딘버러성

에딘버러성 정상부 교회 내의 전몰용사 명부를 확인하는 관광객들.

스코틀랜드 옛 왕국의 수도인 에딘버러는 행정·문화의 중심지이며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특히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 에딘버러성은 한 눈에도 천연요새임을 알 수 있다.
숱한 전쟁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온 이 성은 약 1,500여 년 전에 최초 축성되었다. 16·17세기경, 이 성채는 적으로부터 숱한 포위 공격을 당했으나 결코 함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와중에 대부분의 시설은 파괴되었고 현재의 성안 건축물들은 거의 18세기 이후에 지어졌다.
달팽이관처럼 감아 오른 성곽 내의 건물·지하시설은 과거 전쟁지휘소·감옥·포로수용소로 쓰였지만, 오늘날에는 교회·군사박물관·전사자추모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의 에딘버러성 전경.

■ 전시 영국의 병참기지 스코틀랜드

군수공장에서 포탄신관을 검사하고 있는 영국 여성 노동자.

제1·2차 세계대전 시 독일 공군이 스코틀랜드까지 날아가 폭격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따라서 영국은 이 지역 군수공장에서 수많은 전쟁 물자를 생산했다.
에딘버러 국립박물관 3층에는 세계대전 중의 후방기지 역할과 스코틀랜드인 생활상 자료들이 많이 있다.
1940년 1월, 처칠은 “앞으로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이 전쟁에서 필요할 것이다. 특히 10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군수공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박물관에는 머리 스카프를 단정히 쓰고 포탄신관 분류작업을 하는 수백 명의 여성 노동자와 여성 방공경보요원 사진과 같은 이색적인 전시물들이 꽉 차 있다.
전쟁 기간 내내 우편·간호·교통업무, 심지어 방공호 구축까지 여성들의 몫이었다. 또한 독일군 폭격을 피해 약 200여만 명의 도시 어린이들은 엄마와 생이별하면서 시골로 후송되었다.
아이들을 인수한 농촌 가정들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정성껏 그들을 돌보았다. 육아부담을 덜은 도시권 주부들은 더욱 전시 업무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은 곧 여성들의 사회 참여폭을 대폭 확장시켰다. 사실 영국은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남녀평등이 이루었다.
아울러 1760년대 시작된 산업혁명 당시의 증기기관차, 공장 설비들도 전시실에 있었다. 파격적 동력을 가진 증기기관은 기계·제철·수송분야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결국 영국은 이런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 영국군 최강 부대, ‘코만도’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산과 호수, 이끼 낀 성곽, 역사 깊은 마을과 도시들이 모인 곳이 스코틀랜드이다. 대도시 글래스고의 생동감은 고풍스러운 에딘버러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스코틀랜드 경제 중심지인 글래스고는 산업혁명기에 발전한 공업도시다. 이 도시를 벗어나 북쪽 하이랜드로 가면 잉글랜드인들과의 수백 년 투쟁 간 생겨났던 고성들이 간간이 보인다.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 시 공정부대와 전장의 최선봉에 섰던 코만도부대 기념관도 있다. 소규모 전시실을 가졌지만 부대원들의 애국심·강인함·긍지를 관람객들에게 전해주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80여 년 전 코만도부대 창설·훈련·발진기지였던 이곳은 오늘날 세계 특수부대원들의 고난도 훈련장으로 변모하였다.

■ 글래스고 대학졸업 전사자 추모화단

글래스고대학 정문 부근의 졸업생 전사자 추모화단

영국의 명문대학들은 통상 5~6백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명문 글래스고대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시내 중심의 공원과 연결된 이 대학은 1451년 영국에서 4번째로 창립됐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첨탑을 가진 본관은 지내온 세월을 보여주듯 건물벽면이 까맣게 변해있다.
이곳 졸업생·교수들 중 모두 7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국부론》을 집필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증기기관 발명자 제임스 와트도 이 대학 출신이다.
그런데 학교 정문 옆에 수많은 십자가 조각들이 꽂힌 이색적인 화단이 있었다. 화단 속 작은 표지판에는 ‘베르덩, 이프러, 솜므…’와 같은 제1차 세계대전 전장터 명칭이 곳곳에 적혀있다.
전쟁에서 전사한 글래스고대학 졸업생 추모화단이란다. 바로 이곳에서 대학은 현충일인 11월 11일 매년 다양한 추모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정성껏 가꾸는 추모화단과 끊이지 않는 화환을 지켜보는 학생들에게 별도의 역사교육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네스호를 끼고 있는 1,500년대 스코틀랜드 성곽 전경.

■ 네스호 성곽과 스코틀랜드인 항전의지
전설의 해저괴물이 있다는 네스호는 영국 북부 인네버스 부근에 있다. 길이 36Km, 깊이 310m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다. 실제 괴물 네시 탐사활동이 수시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한편 “네스호를 알리기 위한 누군가의 조작이다”라는 이야기까지 있다. 결과적으로 실체를 알 수 없는 괴물 덕분에 이곳은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수백 년 동안 잉글랜드의 침공과 폭정에 시달려왔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Brave Heart)》에서 주인공 윌리엄이 잉글랜드군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리는 장면에서 스코틀랜드 저항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생존을 위한 그들의 필사적인 노력흔적이 남아있는 어커트 성곽이 네스호 부근에 있다. 페허에 가까운 이 성터는 1509년에 최초 축성되었다.
호수를 끼고 있으면서 성벽 밖으로 깊은 해자를 만든 천혜의 요새다. 좁은 성내에 경계타워, 식량창고, 가축사육장까지 완비되어 있다.
특히 호수와 연결된 작은 부두는 유사시 재보급 및 퇴출로 역할을 했다.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사회에서 최우선 가치는 ‘생존’임을 이 성터는 보여주고 있었다.

■ 영국군 최정예 코만도부대 기념관

코만도기념관 전몰부대원 추모동상. 멀리 보이는 산악지역이 특수훈련장이다.

코만도기념관이 있는 네스호 주변 산악지형은 깊은 계곡과 산림, 호수까지 있어 특수훈련장소로 적격이다.
1940년 6월, 영국은 기적적으로 유럽대륙에서 생환한 34만 명의 병력을 주축으로 군대 재건에 나섰다.
역사상 유래없는 대패배에 국민이 깊은 절망감에 빠지자, 처칠은 즉시 공세작전을 위한 코만도부대 창설을 지시했다.
국민 사기진작과 기습공격으로 독일군 콧대를 꺾어놓기 위해서였다. 선발된 정예 장병들은 바로 이곳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1942년 8월 18일, ‘주빌리 작전’으로 명명된 야심찬 기습작전은 드디어 시작되었다. 코만도를 선봉으로 영국·캐나다군 6,500명, 함정 237척이 도버해협 건너편 디에프 상륙을 위해 발진했다.
다음 날 새벽, 코만도특공대가 해안포대 제압을 위해 제1파로 적진에 접근했다. 그러나 화물선을 호위하던 8척의 적함과 갑자기 조우하면서 기습기도는 독일군에게 노출되고 말았다.
수많은 함정들이 침몰했지만 상륙은 강행되었다. 백사장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살육은 계속되었다. 반나절 전투에서 연합군은 3,700명이 전사하고 2,000명은 포로가 되었다.
이런 뼈저린 실패를 통해 단련된 코만도부대는 1944년 6월,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훗날 전쟁학자들은 “디에프에서 전사한 병사 한 사람이 노르망디에서 10명의 병사를 살려냈다”라고 평가했다. 이 작전의 실패교훈도 코만도기념관에 사진·기록물로 솔직하게 제시하고 있다.

■ 병영체험을 통해 본 영국인의 상무정신
영국군은 수시로 병영체험희망자들에게 부대개방행사를 갖는다. 운 좋게도 왕립 웨일즈연대 국방의용군(TA : Territorial Army) 훈련대대 방문기회가 있었다.
TA는 평시 일정 군사교육 후 민간신분으로 있으면서 본인희망 시 현역근무도 가능한 영국의 독특한 예비군제도다. TA신분으로 아프간·이라크전에 참전한 영국군도 상당수에 달한다.
이 행사는 인터넷 신청 후, 기차·버스를 갈아타면서 스스로 지정부대로 가야한다. 소요 경비는 물론 본인부담이다.
대대장 스티브 중령은 방문객들에게 국방예산의 3%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TA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자매대학 생도대(CCF : Combined Cadet Force) 교육체계도 소개했다.
이것은  대학생들 중 일부 희망자들에게 일정기간 군사교육을 시켜 군 간부 예비인력을 사전 확보하는 제도이다.
교육과정에는 실탄사격, 낙하산강하, 스쿠버다이빙 및 해외전지훈련까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종합훈련사열 후 생도대, 학부형, 초청인사, 군악대가 어우러진 병영축제를 갖는다고 한다. 한국 일반대학의 ROTC·군사학과 훈련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모병제를 시행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국학생들이 스스로 군사훈련에 참여하는 사실이 놀라왔다. 물론 이런 스펙이 군 간부지원 및 취업 시 긍정적 평가요소가 된다.
곧 이어 테러진압, 응급처치, 호수횡단 등의 훈련시범이 진행되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이런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영국인들의 국방에 대한 관심도 부럽기만 하였다.

병영 체험자들에게 훈련 시범을 보이는 영국군 장병.
영국 일반대학생 군사훈련 모습. 예상외로 여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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