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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정신에 바탕한 애국일념으로 축구전도

기사승인 2016.08.11  11: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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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재(해병 462기) 대한축구협회 국장

인내의 한계를 넘어 도전하는 스포츠정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극기의 해병대정신
“나의 모든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원재 대한축구협회 국장은 1982년 10월 20일 해병 462기로 입대해서 백령도 여단본부 정보참모실에 근무하다가 85년 만기 제대했다. 이 국장은 명문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학과 2년 재학 중 해병대를 지원했다.
제대 후 복학하여 대학을 마친 뒤 동부건설과 현대건설에서 기획업무와 홍보업무를 담당하다가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정몽준 회장이 홍보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방침에 의해 2002년 1월 대한축구협회 홍보국의 창설 멤버로 스카우트되었다.
2002년 월드컵대회 당시 전 국민이 하나가 되게 한 축구전도사로 맹활약을 한 이원재 국장은 2010년 한 번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허정무(해병 357기) 감독이 이끄는 남아공월드컵대회에 이원재 국장을 언론담당관으로 발탁한 것이다.
허정무 감독은 후배인 이 국장에게 국내 언론과 외신기자들의 언론플레이 전권을 넘긴 채 오직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허정무 감독은 한국 축구 원정 월드컵 역사상 16강에 진출하는 최초의 감독으로 역사에 남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국장은 그 후 서울월드컵박물관장을 1년여를 역임하고 지금은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국가대표 훈련원(National Football Center, NFC)의 실무 최고 책임자로 있는 중이다.
20년 전 건설회사 재직 시 부동산 관련 서적을 국내 최초로 저술하여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원재 국장


당시 그의 인기를 눈여겨 본 모 대학에서 사회교육원 부동산학과를 개설해 줄 테니 교수로 재직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이원재 국장은 이를 고사하고 대한민국 축구전도사의 자리에서 한길로만 살아왔다.


- 해병대에 가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 해병대에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 동기였습니다. 당시 49.5kg으로 체중미달이었는데 군의관이 50kg으로 올려서 합격시켰습니다.
아마도 명문고와 대학생이었던 저를 타군으로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습니다. 과거에는 해병대에서 축구, 야구, 연예인 등을 특별 입대시켰었으니까요.


- 해병대가 된 후 어떤 정신으로 살아왔습니까?
 
입대 전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소년이었지만 제대하고 나니 자기도 모르게 와일드해지면서 강하고 터프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구나 강직한 축구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다보면 해병대정신이 크게 도움이 되더군요.
스포츠정신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 도전하는 그것이라면 해병대정신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극기의 정신입니다.
저는 해병대 신병훈련소에서 인간개조의 용광로를 거친 사람입니다. 그 정신이 이후 저의 모든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크게 보면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입니다. 축구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사랑을 통해 발전해 왔고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국민 됨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를 일깨워주는 자랑스러운 스포츠였습니다.
젊어서는 대한민국 축구를 알리는 전도사로, 지금은 축구의 살아있는 요람을 관리하는 책임자로써, 해병대정신에 바탕한 애국 일념(一念)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해병대 축구인들은 누구며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먼저 유명하신 분은 김정남, 김성남, 김강남 삼형제가 계십니다. 세 형제가 모두 해병대에서 뛰신 해병대 가족이십니다. 94년 월드컵 감독이셨던 용인축구센터 김호 총감독도 계십니다.
경기인 출신으로 유일하게 회장직을 역임했던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자문도 해병대 출신이시고, 불세출의 풍운아로 축구계를 주름잡았던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감독 이회택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남아공 월드컵 16강에 빛나는 허정무 전 감독님, 그리고 아시아축구연맹 AFC 기술위원이신 조영증 씨도 모두 같은 해병대 가족입니다.

이원재 국장의 해병대 시절 모습


- 해병대정신과 축구정신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축구의 기본은 강인하고 두려움 없는 돌파력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적해병’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2002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한국 축구가 갖고 있는 정신은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신화를 창조한 한국축구였죠.
당시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기자 세계인들은 한국 축구선수들이 엔진을 단 것 같은 스태미나를 가졌다며 우리 선수들의 강인한 체력에 놀랐습니다.
해병대 훈련소에서는 흔히들 말하는 ‘빡센’ 훈련을 우선 마치고 나서 마무리로 완전군장 천자봉 구보를 통해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마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해병으로 인정합니다.
이는 비단 해병대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축구에서도 월드컵 같은 토너먼트 대회는 터프한 체력전이 벌어집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기술도 전술도 무용지물,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마지막의 임전무퇴 정신만이 간발의 차이를 가르고 승부를 결정짓습니다.
축구는 골프 같은 점잖고 한가한 운동이 아닙니다. 몸싸움과 태클이 일상다반사, 원래 축구는 민간의 거친 공놀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체격이 작다고, 기술이 떨어진다고, 전술이 조금 못해도 정신력으로 그 부족함을 메우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 축구는 그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해병대는 연전연승 상승해병 칭호를 받고 있죠. 월남전 짜빈동전투에서 신화를 창조한 해병이라는 세계인들의 놀라움이 있었듯이 한국 축구도 2002월드컵 때 신화를 만든 사나이들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축구의 정신은 이렇듯 해병대의 그것과 DNA가 유사합니다. 호랑이와 사자가 생김새는 다르나 마찬가지로 고양이과 맹수인 것처럼, 해병대와 축구는 비록 군과 체육이라는 다른 분야에 있으나, 애국(愛國)과 상승(常勝)이라는 정신적 토대는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병대 출신으로, 대한민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여태껏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큰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고, 또 감사와 겸허의 근본이기도 합니다.

 

신동설 발행인 sds1557@hanmail.net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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