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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원 경기도재향군인회장을 만나다

기사승인 2024.01.24  15: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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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원 경기도재향군인회장

작년 2월 28일 경기도재향군인회장 선거에서 해병대 예비역 하사 강명원 평택시재향군인회장이 제28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강명원 회장은 1955년 평택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85개 시민단체모임인 평택시민단체협의회 회장과 1만7천 여 명의 평택시재향군인회장 그리고 평택시해병대전우회장을 역임한 평택 토박이 유명인사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전국광역시·도회 14, 해외지회 23, 시·군·구회 223, 읍·면·동회 3,072 개회를 포함하는 1,000만 회원의 단체다, 그 중 강명원 회장이 이끄는 경기도회는 전국 최대의 회원을 거느린 단체다.

 

<일문일답>

회장님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평택시 토박이이신 강 회장의 해병대 이야기와 단체활동을 듣고 싶습니다.

70년 전 평택에서 큰형님보다 20년 아래이고 막내 누나와 16살 아래인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형제 중 5명이 죽고 5명만 살았는데 막내인 저는 평택초교를 7살에 입학, 16살에 중학을 졸업하고 수원으로 와서 악기사에 취직해 피아노 조율과 악기수리 기술 배웠지요. 어린 마음에 중학만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에 가려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막내 아드님이면 사랑도 많이 받으셨을 텐데 가정형편이 어려웠습니까

저희집은 평택 전체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는데 아버님은 장자만 가르치고 저는 더 이상 신경을 안 쓰셨어요. 당시 자식 대학 공부시키는 사람이 면에서 1~2명 정도였는데 형님은 당시 외대 서반아어과 학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환경에 저는 더 자립심이 생겼습니다.

그럼 강 회장님 의지대로 학교를 다녔는지요

수원 악기사에서 피아노 조율과 악기 수리 기술을 배워 평택에서 악기사를 개업하려고 포장마차를 하는 등 자금을 모아 악기점을 냈다가 모든 악기가 전자화되는 바람에 운영이 안되서 문을 닫고 1톤 트럭을 사서 마이크를 달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과일 장사를 했습니다. 40대 후반에 도교육위원회에 전화로 문의해서 “고등학교 가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주세요” 하니까 천안을 안내해줘 천안중앙고를 졸업하니까 50이 넘었지요. 거기서 다시 한경대학교 야간 입학(토목과) 후 한학기 다니고 저녁 사회활동이 어려워 휴학하고 연암대 조경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밑바닥부터 올라온 과거사를 들으니 새삼 강 회장님의 의지력이 빛나 보입니다. 다음으로 해병대 입대하신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 육군 영장이 나왔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동안 제가 살아온 길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대 정신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75년 해병대 부사관 118기로 입대해 포항 사단 보병하사로 근무 후 78년에 하사 제대했습니다.

제대 후 사회활동 이력을 부탁드립니다.

저의 인생은 해병이 되고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해병대 단체활동을 열심히 해온 결과가 오늘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1989년 해병대전우회가 조직될 때 저는 이일우 회장(해병187기)님 당시 사무국장을 맡았다가 나중에 평택시해병대전우회 회장을 4년간 했습니다. 당시 해병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매우 뜨거웠죠, 심지어 가출한 딸을 찾아 달라거나 열차에서 떨어진 사람을 구해 달라는 등 경찰보다 먼저 해병대전우회를 찾아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해병대전우회장 이후 평택시 85개 시민단체협의회장과 재향군인회장 등 단체장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평택 단체장으로 계실 때 가장 잘하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무엇보다 쌍용자동차가 도산 위기에 있을 때 쌍용이 망하면 평택 경제가 끝장이 날 텐데 제가 나서서 성명서를 내며 정부에 충언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로 인해 시민사회단체 연대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포장을 받았습니다.

그러시군요. 대한민국 최대 단체인 경기도재향군인회장을 맡아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재향군인회는 850만 재향군회원들의 권익과 친목, 더 나아가서 국가발전과 사회공익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현재 북한 김정은의 핵 공갈이 잘 먹히지 않는 이유는 우리나라 남자의 대부분이 전투 능력을 갖춘 850만 재향군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대 회원이 있는 경기도는 북한과 접경지역이 길고 광활합니다. 그러함에도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의 지원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기도의회 행안위 소속 의원들을 만나 저희의 역할을 역설했지만 아직 답을 못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병대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여 1,400만 경기도민이 안심하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경기도재향군인회장이 되겠습니다.

끝으로 해병대에 바라는 말씀을 부탁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그 바탕엔 6·25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주신 해병대 선배님들이 계셨습니다. 그 후 월남전쟁에서 용맹하게 싸우신 청룡부대 영웅들이 계십니다. 이승만 대통령께서 국군을 창설하실 때 해군 다음으로 해병대를 창설해 여순반란사건과 공비 토벌 그리고 통영상륙작전 등을 통해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있게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나라를 구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해병대의 수장이 당연히 대장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생깁니다. 물론 군인사법에서 대장이 있게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사령관이 대장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강 회장님과 같은 입지전적 인물이 해병대인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아무쪼록 하시는 일에 큰 성과를 거둬 안정된 대한민국이 되어 국민을 평안하게 해주길 부탁드립니다. 새해 첫 호에 강 회장님과 같은 의지의 해병대를 만나서 매우 감사합니다. 【발행인 신동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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