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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해병이 되기까지… “인간개조 지옥훈련 돌파!”

기사승인 2023.01.25  15: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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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진해교육기지사령부에서는 신병들이 입대하는 날부터 기합으로 시작됐다.

이질범은 1미터 80이 넘는 훤칠한 키에 단호하면서도 온화하고 의협심이 강한 청년이었다. 거기다가 남다르게 빠른 두뇌 회전과 유머감각이 뛰어나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 또는 ‘짱’ 소리를 들었다. 그는 남아로 세상에 태어났으니 ‘무적의 사나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대를 동경하게 되었고 군에 갈 나이가 되자 국방의 의무를 해병대에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72년 7월 월남전이 한창일 때 해병대 지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서울병무청을 향했다. 막상 도착하니 의외로 지원자가 많은 것 아닌가? 그러자 병무청에서는 시험 응시 자격을 주기 위해 대방동 해군본부 건물을 선착순으로 돌아오는 순번으로 잘라서 응시자를 1차로 걸러냈다.
그러니까 해병대 입대 원서 제출 자격을 얻기 위해 시작부터 ‘X’나게 뛰어야 했고 그나마 절반 안에 들어야 시험지를 받아들고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탈락자 절반은 ‘X’나게 뛰다가 시험도 못 보고 돌아가야 했던 것이 그 당시 해병대의 인기였다.

1달 뒤 8월 15일 병무청에서 합격 통지서가 날아오자 동네에 경사가 벌어졌다. 반장집 아들이 해병대에 합격했다고 계란을 삶아서 가져오는 아줌마, 돈을 허리춤에 끼워주는 아줌마, 막걸리 통을 들고 오는 친구들 등등 무운 장구를 빈다면서 요란한 송별식을 해줬다.
한숨도 못 잔 이질범은 추적추적 가을비를 맞으며 전날 빡빡 밀은 머리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대문을 나섰다. 동네 어귀에서 “건강하게 잘 있다가 와야혀, 알았지야.” 하시며 손을 흔드는 동네 어른과 아주머니들을 멀리하면서….

1972년 8월 26일 입대자들을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로 아수라장을 이룬 용산역에 도착, 입영 열차에 올랐다. 밤 10시가 되자 헌병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승차 명령과 입소자가 아니면 모두 하차하라!”고 소리를 쳤다. 새벽 4시 삼랑진역에 열차가 멎었다. 헌병들이 객차를 돌며 “입대자는 모두 하차하라!”고 명령한다.

모두 모이니 어림잡아 40여 명이 넘는 것 같아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없단다. 인솔 헌병이 기발한 제안을 하기를 ‘해병대 곤조가’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구분해서 나눠 식사를 시키겠다며 야릇한 미소를 띠며 호령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병대 곤조가’를 모르는 팀은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해병대에 입대하는 놈들이 ‘해병대 곤조가’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금부터 대가리 땅에 박는다!”고 헌병이 소리를 질렀다.

입대식도 전에 기합이라니! 하지만 거쳐야 할 일이기에 엉거주춤 머리를 땅에 박았다. 호령이 다시 떨어진다. “모두 손을 등 뒤로 올린다! 앞에서 곤조가를 선창하면 따라 배우도록 한다. 이상!” 세상에 태어나서 듣도보도 못한 별 노래를 배우고 모른다고 기합을 받다니….
“시작! 하나 둘 셋 넷!” 인솔 헌병이 선창한다.

흘러가는 물결 그늘 아래 편지를 띄우고 
흘러가는 물결 그늘 아래 춤을 춥시다. 
처녀 열아홉 살 아름다운 꿈속의 아이러브 
라이라이 차차차
당신만이 그리워서 키스를 하고요, 
당신만이 그리워서 키스를 합니다. 

90도 각도로 머리를 땅에 박고 부르니 목구멍이 막혀서 노래가 잘 나올 리가 없다. 숨이 차올라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그러자 헌병들의 구둣발 소리가 사납게 들리더니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그야말로 집 떠나온 지 하루도 안 되어 해병대 기합의 시작이었다. ‘무적해병이 되기 위한 훈련이 얼마나 힘든 길인가!’의 신호탄인 것이다.

드디어 진해역에 도착했을 때는 먼동이 터 오르는 아침이 되었다. 정문을 통과하면서 교대 헌병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길을 안내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임금 왕(王)자를 따서 왕자식당이라 하는데 3,000명이 들어오는 대형 식당이었다. 해병대가 되기 위해 훈련병, 사관, 부사관 등 해병대 일원이 되기 위해 모두 이곳을 거치며 눈물 젖은 식사를 해야 하는 곳이다.

전반기 8주 훈련은 동작을 맞추는 제식훈련을 기본으로 하여 중대 공격, 소대 공격, 각개전투, 그리고 상륙작전에 필요한 바다 훈련과 하선망 훈련 등을 익혔다. 훈련은 어느 한 가지도 쉬운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튼튼한 체력에 최고의 인내를 요구하는 강도 높은 훈련으로 죽음보다 더 지독한 지옥과 같은 훈련의 연속이었다.

“군인은 사람이 아닌 집단으로 조직된 유기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헌법에서 정한 군인이란 개인으로의 자유와 자격을 국가가 갖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훈련에서 강조하는 기합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법이란 걸 여러분이 이해 해주기 바란다”하며 교관은 자신만의 잣대로 매우 유식한 것처럼 말한다.

혹독하기로 유명했던 해병대 기합.

말로만 들어오던 각개전투 훈련 날이 왔다. 산 밑에 몸을 은폐할 수 있는 흙무덤과 돌무덤, 그리고 낮게 쳐진 철조망을 통과하고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나무를 통과해야 하는 훈련이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 상사 계급장의 자칭 칠성장군이라는 교관이 일갈했다.
“여러분이 이 칠성장군을 평생 동안 잊지 않게 해주겠다!”하고는 “양팔 간격으로 모두 서 있는 그 자리 땅바닥에 눕는다!” 명령한다. 그리곤 “좌로 소 이동! 우로 소 이동!” 명령을 하는데 딱딱한 땅바닥 위에 돌멩이 위를 그냥 사정없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비명 소리와 함께 칠성장군이 명령하는 대로 굴러야 했다. 

돌멩이 위를 굴러가려면 민첩할 수가 도저히 없는데 그때마다 칠성장군의 몽둥이질은 인정사정 두지 않았다. 모두가 신음 소리를 내며 육신들을 고통스럽게 울퉁불퉁한 돌멩이에 밀착시키고 있었다. 칠성장군이 내리치는 몽둥이보다 깔려 있는 돌멩이가 더 아팠다. 나중에는 하도 굴러서 어지럼증으로 구토하기 시작했고 동기생들은 그 오물 위를 함께 뒹굴어야 했다.

그 시절 해병대원들의 체력 훈련 모습.

드디어 칠성장군은 “동작 그만!”을 했고 비실비실 일어난 훈련병을 향해 히죽히죽 웃으며 “여러분 지금 고향 생각 나지요?”하며 그야말로 멍든 곳에 비수를 들이대는 것 같은 얄미운 질문을 던졌다. “예, 엉~엉”하며 그 판에 고향 소리를 들으니 통곡이 쏟아질 수밖에 더 있겠는가!

“소리가 적다. ‘좌로 이동! 우로 이동!’ 더하고 싶은가?”
“아닙니다!”
다급해진 훈련병들의 절규가 쏟아졌다.
“됐다, ‘그럼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를 힘차게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르라고 하다니 병 주고 약 주는 격 아닌가? 상사와 부하라는 유기적 조직체가 아니라면 벌써 욕설과 함께 쥐어팼을 것이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체력단련 및 인내심 극복 훈련.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엉 어~어엉” 하며 사나이들은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기 시작했다. 순간 칠성장군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뭐야, 그 정도의 심약한 정신으로 해병대에 입대한 건가? 그래 가지고 어떻게 세계 최강 대한민국 해병대 무적해병이 되겠다는 건가, 앙? 지금까지 훈련은 무효로 한다. 처음부터 다시 한다!”
눈앞이 아찔했다. 후회할 겨를이 없다.
“좌로 소 이동! 우로 소 이동! 열 번 반복한다. 행동 개시!”

정신없이 얼마나 굴렀을까.
“모두 제자리 일어섯!”
하지만 모두 “죽일 테면 죽여라” 하는 식으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비실비실 일어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때쯤 칠성장군의 표정이 달라지고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졌다.
“제군들, 훈련에 열심히 임해줘서 고맙다. 오늘 오전은 이것을 마치고 오후에는 장애물 교장에서 각개전투 훈련이 실시된다. 오전 과업은 이상 끝!”
훈련병들은 그 말에 생기를 찾고 벌떡 일어나 왕자식당으로 향해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계속>

▲ 이질범
소설가
해병 253기
해병북파특수공작대(MIU)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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