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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고문, 박실 전 국회사무총장 별세

기사승인 2022.11.28  14: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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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실 전 고문

무적해병신문 창간 시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본지 고문을 맡아 해병대 언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박실 고문이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故 박실 본지 고문은 해병대를 사랑했던 존경받는 언론인이고 정치인이었다.
필자가 신문을 창간하기 앞서 고견을 부탁했을 때 “사장이라고 남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직접 일선에서 뛰면서 취재 등 몸을 아끼지 말아라”하며 “신문사는 잘 되도 또는 안 되도 모든 책임은 경영자에게 있다”며 솔선수범할 것을 충고했다.
필자는 그 고견을 실천에 옮겨 지난 11년간 연간 5만km 이상을 운전하며 전국을 뛰며 취재와 기사를 작성하는 등 오늘의 자랑스러운 해병대 언론으로 정착시켰다.
故 박실 고문은 전주고를 나와 서울대정치학과를 나온 수재로 영어, 중국어, 일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실력자이고 언론인이고 정치인이다. 

■ 故 박실 고문 삶의 여정
1963년 한국일보 기자로 시작, 1977년 제16대 한국기자협회장을 역임한 후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언론인 811명이 해직당할 당시 제1호로 해직 당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아있다.
신군부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 곳에도 그를 받아주지 않는 풍토였으니 취직을 할수 없는 형편이라 출판사를 차려 자유인으로 살다가 1984년 김대중 김영삼 前 대통령이 연합한 민주화추진협의회 세력에 합세, 정치인의 길로 입문했다.
그리고 서울 동작구에서 ‘박해 받은 실력자 박실’이란 표어를 내걸고 당선된 후 내리 제12·13·14대 3선 국회의원과 제19대 국회사무총장을 역임했다.
故 박실 의원은 동작동에서 평생 살아오면서 지역사회의 멘토로 살았다.
“신형, 국회의원은 옷 벗으면 대개 그 지역을 떠나게 돼. 각종 애경사와 행사에 초청받아 없어지는 돈도 수월치 않고 지역 민심과 동화되기 힘들기 때문이요.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뼈를 묻을 자신이 있소.” 하는 그 한 마디가 그의 인품을 말해 주고 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정직, 온화한 성품과 주변 친지와 선후배들에게 덕을 베푸는 삶을 존경하고 있다.
11월 첫날 월요일 아침임에도 그를 배웅하러 4·19민주묘지까지 동료의원, 혁명열사 동지들, 정읍중 후배 등 60여 명이 넘는 숫자가 따라왔다는 것이 그의 인품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박실 형님 평안히 가십시오. 【신동설 발행인】

故 박실 전 고문은 제12·13·14대 3선 국회의원과 제19대 국회사무총장을 역임했다.

2022년 10월29일 별세, 11월 1일 발인 4·19민주묘지 안장. 
유족, 婦 전은희여사, 子박정원(단국대교수).박석원(한국일보논설위원) 

▲ 故 박실 약력
1939 전북 정읍 출생
1958 전주고 졸업
1960 4·19민주항쟁에 앞장서 자유·민주·정의 외침
1963 서울대 정치학과
1968 미국 조지아대대학원 신문학 석사
1983~1995 13·14·15대 국회의원(서울 동작구)
1978~2000 민주당 지도위원, 당무위원, 국회 사무총장, 
2000~2009 한남대 예우교수
2011~2021 무적해병신문 고문
최근저서 : 벼랑끝 외교의 승리, 6·25전쟁과 중공군 (청미디어)

▲ 상훈
2003 정조근정훈장
2007 건국포장
2014 제2회 국제평화언론대상 언론발전부문 대상


■ 조사
존경하는 박실 형, 형은 의장이고 의원이고 나의 소중한 친구입니다.
가는 길이 꽃길이고 평안의 길이고 영원한 안식의 길 되십시오.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과 술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하였지요.
나와는 고향도 같고, 학교도 같고, 4·19 때도 총탄 앞에 어깨를 함께 했던 오래 묵은 친구인 형의 영전에 마지막 인사를 한다니 한없이 슬퍼하면서 위안을 갖는 시간입니다.
뛰어난 의사요 열사로서 이곳에 잠든다는 것이 말입니다.
거시적 거물인 형은 “정당은 일시적 방편이다. 영원한 것은 국가다” 하시며 좌절과 걸림돌의 진로 방해물들을 오히려 디딤돌로 생각하며 살아오신 분이 당신이 아니십니까?
고뇌의 시간을 극복하고 저력을 자산으로 삼아온 사람이 박실 형이십니다.
학교에는 마침표가 있지만 일에는 마침표가 없다는 일념으로 빛나는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특히 6·25전쟁과 중공군 저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역저입니다.
형은 자랑과 사랑을 남기고 가셨기에 슬픔을 덜 할 수 있습니다.
조국과 이웃 그리고 가족 사랑이 넘치는 머리가 차고 가슴이 따뜻한  좋은 친구가 당신이었습니다.
“내가 속한 당은 일시적인 것이고 국가는 더 크고 그 보다 더 큰 것은 인간이다” 하시며 남에게 덕을 베푸는 존경받는 삶을 사신 분이 당신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인간 박실은 깔끔한 인격자요, 깨끗한 정치인이요, 온화한 인정을 가진 영원한 친구로 영원히 기억될 나의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저 역시 하늘이 부르면 갈 텐데 그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형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2022년 11월 1일
대한민국헌정회 명예회장 유경현

2014 제2회 국제평화언론대상 언론발전부문 대상 수상 모습.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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