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내 친구, 윤월 스님의 억울한 죽음

기사승인 2022.07.29  09:49:51

공유
default_news_ad2

1950년 8월 29일 영천(신녕)전투 보현산 450고지에서

문재인 父 문용형을 생포했던 생존 학도병

故 윤월 스님.

■ 윤월 스님의 석연치 않은 사망
윤월 스님(본명 서승남)이 2021년 9월 14일 오전 5시 동해안 여행지에서 길을 걷다가 각혈(咯血)하며 쓰러져 119 구급대로 이송 중 사망했다(향년 89세)고, 뉴스타운 손상윤 회장이 발표했다.
손 회장은 “며칠 전 스님과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도 건강했다. 지난(2021년) 6월 26일 학도병 제막식에도 참석해 축사와 증언을 할 만큼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며 피를 토하고 쓰러진 점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면서 윤월 스님이 갑자기 각혈하며 사망한 것에 대해 사인(死因)을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승남 씨는 필자와 같은 대학(같은 학과) 동기 동창생 즉, 친구다.
군대는 같은 해병대 출신으로 필자는 장교(대위, 해간 제34기) 출신이고, 서 씨는 해병대 사병(제31기) 출신이다.
스님의 소속인 갑사(甲寺, 충남 공주) 관계자에 따르면 “스님은 13일 서울로 가신다며 절에서 나가셨는데 사망 통보는 14일 오전 강원도 동해에서 받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평소 스님께서 외출을 자주하시고 혼자서 여행도 잘 다니실 정도로 건강하셔서 이날(13일)도 서울로 출타하시는 줄 알았는데 함께 동행했던 A여행사 대표로부터 14일 새벽 5시에 갑자기 각혈을 시작해 119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하던 도중 숨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 ‘저 친구가 역린을 건드리면 후환이 없을까?’
2021년 2월 16일 뉴스타운 TV에 출연한 서승남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제1사단 15연대 소속으로 1950년 8월 29일 경북 영천 신녕전투에 참가해 보현산 서남쪽 400고지 인근에서 당시 동료 학도병 2명(스님 포함 3명)과 함께 북괴 인민군 상위(대위)인 문용형(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친)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체포하는 과정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소총으로 문 씨를 폭행하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이 방송을 시청하면서 필자는 ‘저 친구가 역린(逆鱗)을 건드리면 후환이 없을까?’라는 염려를 하였다.
※ 역린(逆鱗) : 용(龍)의 턱밑에 거슬러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한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로, 임금의 분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니나 다를까 필자의 염려처럼 2021년 9월 14일 길을 걷다가 피를 토하면서 쓰러져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 건강하던 사람이 피를 토하고 쓰러져….
필자는 서승남 씨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고, 며칠 후 이 칼럼을 썼다.
그러나 즉시 발표하는 것은 조심스러워 발표를 하지 않았다.
이제는 정권이 바뀌었으므로 친구의 명복을 빌면서 발표한다.
대학 다닐 때 서승남 학생은 연령이 많으므로 강의실 뒷좌석에 앉았고, 필자보다 7년 연상이므로 필자는 그를 “서 형!”이라고 불렀다.
교수님의 교탁으로부터 중앙 세 번째 의자(수강 학생용)가 필자의 자리였다.
필자가 정해놓은 것은 아니고, 늘 먼저 가서 그 자리에 앉으므로 전매특허를 받은 것과 같은 자리였다.

■ 월남전참전 귀국 후 다시 만났지만…
서승남 학생은 서울 가회동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의 부친은 일본 약학대학에 유학, 약사 자격자로 알고 있다.
필자는 대학 4학년 2학기 겨울방학 때 해병대 장교 시험에 응시, 합격해 해병대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하였다.
소위 때, 월남전에 참전 명령을 받고 1967.1.7. 포항 해병 제1상륙사단으로부터 병력 170명을 인솔하고 가는 제대장(梯隊長)으로서 포항역에서 부대장에게 출국신고를 하고 기차로 부산항으로 이동, 육군 파월부대와 합류 부산시민의 환송식이 끝난 후 MST(Military Sea Transportation, 해상군사수송함) 가피(GAFFEY, 18,000톤)호에 승선했다.
청룡부대로 월남전에 참전, 소총소대장, 중대 작전장교, 부중대장, 보병대대 참모 등으로 13개월간 전투를 하고 귀국하였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1968.2.11. 내가 탄 귀국선 ‘제너럴 고든’호가 부산항에 가까워지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후 즉, 대학 졸업 후 필자는 서승남 씨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필자가 군에서 전역 후 수년 전 화신백화점(현 서울 종로타워) 옆길(조계사 건너편)을 걸어가는 데 어떤 스님이 합장한 후 필자에게 절을 해서 필자가 좀 당황스러워했더니 그 스님이 필자의 앞으로 더 다가와서는 “나 서승남이야!”라고 해서 필자가 깜짝 놀랐다.
필자가 그에게 “서 형! 어떻게 스님이 되었어요?”라고 하자 그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고 하였다.
둘이 함께 걸으면서 대화를 하였다. 이날 서승남 씨를 만나서 대화한 것은 대학 졸업 후 처음이었고, 참 반가웠다. 그런데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될 줄이야….
서승남 씨의 명복을 빈다.

▲ 조성국(해병대사관 34기)

전 경민대학교 교수·도서관장

전 의정부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

법학박사

국가유공자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