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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어디서 어떻게 활동해왔나?

기사승인 2021.08.17  13: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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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북한 간첩 사건의 역사

■ 동백림사건(1967.7.8.)
동백림사건 또는 동베를린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동백림’은 당시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과 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조선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 교육을 받으며 대남적화활동을 하였다고 주장했다.
간첩으로 지목된 인물 중에는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던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로가 포함되어 있었다.
1967년 12월 3일 선고 공판에서 관련자 중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으나, 대법원 최종심에서는 간첩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 1·21사태(1968.1.21.)
1·21사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무장 공비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를 기습하려 했던 사건으로, 당시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공작원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사건이라고도 불린다.
북한의 특수부대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부대 소속 31명이 조선인민군 정찰국장 김정태로부터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지령을 받고, 한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 수도권까지 잠입했다.
청와대 근방 세검정고개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나자, 검문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했으며,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귀가하던 많은 시민들이 죽거나 다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군·경은 즉시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합동수색전을 전개해서 김신조를 생포하고, 28명을 사살. 나머지 2명은 도주한 것으로 간주되어 작전은 종료됐다.

■ 이수근사건(1969.7.3.)
이수근은 북한의 언론인으로 이중간첩 혐의로 대한민국에서 처형됐다.
1967년 3월 판문점을 통해 월남, 귀순했던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이 1969년 1월 남한을 다시 탈출하던 중 베트남의 사이공 공항에서 체포됐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이수근이 조선노동당에서 숙청을 면할 수 없게 되자 남한에 위장귀순하여 활동하기로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월북하려 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북한 고위직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귀순으로 북한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고, 한국은 대북선전 활동에 매우 유용한 인물을 확보하게 된 셈이었다.
그러나 국외탈출 시도로 월남한 지 2년 만에 위장간첩혐의로 체포돼 이중간첩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1월 이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조작사건으로 결론내렸다.

■ KAL기 폭파사건(1987.11.29.)
1987년 11월 28일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한 대한항공 858기가 아랍 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기착한 뒤 방콕으로 향하던 중 미얀마 상공에서 소식이 끊어졌다.
이 여객기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한국인 근로자 등 승객 93명과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 등 모두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고, 여객기 잔해는 태국 해안에서 발견됐다.
하치야 신이치, 하치야 마유미로 위장한 북한 대남공작원 김승일(현장에서 자살), 김현희 두 북한공작원은 국제공조 하에 조사하고 있던 현지조사단에 의해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됐다.
김현희는 북한 김정일의 친필 공작명령을 받고 기내에 라디오와 술병으로 위장한 폭발물을 놓고 내려 공중에서 폭발했다고 밝혀 사형이 선고됐으나 전향의사 표명과 김정일의 도구로써 이용된 점이 정상 참작되어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 최덕근 영사 피살 사건(1996.10.1.)
1996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피살된 최덕근 재러시아 영사는 외무직 부이사관으로 국장급이면서 외무부서 내에서 몇 안 되는 러시아 정보통이었다.
그가 주로 맡은 업무는 대북정보수집이었으나 이 지역에 탈북자들이 많아 이 일도 담당했다.
그는 괴한의 습격을 받아 피살당했는데, 1996년 서울에서 실시된 부검 결과, 시신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소지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종류의 독극물이 검출됐다.
러시아 측은 최덕근 영사 사건을 강력범의 소행으로 결론짓고 사실상 수사를 종결처리했다.
정황상 최덕근 영사는 북한 측의 소행으로 추정되었는데,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최덕근 영사는 한국외교관이 해외에서 피살된 최초의 사건이다.

■ 깐수사건(1996.7.21.)
중국 길림성 조선족 출신인 정일수가 1974년부터 5년간 북한에서 간첩 교육을 받은 뒤 84년 레바논계 필리핀인 교수 ‘무하마드 깐수’로 위장, 국내에 들어왔다.
그는 12년 동안 간첩으로 암약하고 4차례에 걸쳐 밀입북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1997년 대법원 형사2부는 정수일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상고심에서 ‘국가기밀 탐지. 수집. 전달죄’에 대해 일부 무죄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지만, 국가보안법상 잠입. 탈출, 회합.통신, 금품수수 죄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다.

■ 여간첩 원정화 사건(2008.7.15.)
탈북자 출신 원정화는 북한 보위부 공작원으로 포섭된 후 중국에서 활동하던 중 2001년 간첩임무를 띠고 남한 잠입, 최근까지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원정화는 중국을 14차례 오고 가면서 재중 보위부 요원을 직접 만나 지령을 수령하고 활동상황을 보고했다고 한다.
또한 남한 침투 이후에도 3회에 걸쳐 중국을 경유, 북한을 출입하면서 지령을 받기도 했다.
원정화는 수시로는 일본을 방문해 조총련 단체와 접촉하며 탈북자의 행적을 찾으라는 북한 보위부 지시를 실행하기도 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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