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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마크는 ‘영원한 해병’을 상징한다

기사승인 2021.08.17  11: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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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 앵카 도안자, 청암 이흥주(해병 6기) 화백

청암 이흥주 화백

청암 이흥주 화백은 6·25전쟁 때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해병대 입대를 결심했다.
6·25전쟁이 발발 당시 인천중 5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 화백은 국방부 정훈국에서 대한민국학도의용군을 조직하자 인천북부지구 선무부장이 되어 국방부 앞에서 “우리도 군에 지원하게 해달라”는 집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50년 12월 18일 동료 학도병들과 함께 인천을 출발, 마산역에 집결해 1951년 1월 5일 신체검사를 받고 약 2주간 소총사격과 수류탄 던지는 법, 간단한 기초 교육만 받은 뒤 1951년 1월 24일 해병 6기로 입대했다.
해병대 8대대로 배속되어 동해 양도작전에 투입되어 탈환하는 작전을 펼쳤고, 원산 명사십리 백사장으로 상륙하면서 80여 명의 동료들이 전사하는 아픔도 겪었다.
당시 이흥주 화백은 8대대장인 황영 소령의 전령으로 있었다.

■ 해병대 마크 탄생
원산에 주둔하고 있을 때 황영 대대장이 부산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이 화백에게 신문지 오린 것을 건넸다.
그 신문지상에는 해병학교에서 학교를 상징하는 마크를 공모한다는 광고가 있었다.
황 대대장이 한번 출품을 하라고 해 이 화백이 도안해 출품한 마크가 현재까지 사용되는 ‘해병대 앵카’이다.
그때 각지에서 출품된 전체 작품 수는 수백 편이었다.
1951년 4월에 해병간부후보생들을 양성하기 위해 진해에서 해병학교가 창설됐다.
때마침 해병학교를 초도순시 한 해병대사령부 김성은 참모장은 이흥주 화백의 작품을 보고 “이 마크는 해병학교 마크가 아니라 해병대 전체를 상징하는 마크로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김 참모장은 이 마크를 가져가 해병대사령부에서 참모회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해병대를 대표하는 상징 마크로 결정했다.
이 화백은 그 당시 20만 환을 상금으로 받았는데, 당시 일병 월급이 150환 정도였으니 상당히 많은 상금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1개 소대 병력이 축하 회식을 하면서 워낙 많은 술을 먹는 바람에 오히려 돈이 부족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과 함께 2대 상징물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은 해병대정신을 한 마디로 함축시킨 구호로 해병대의 과거와 오늘을 있게 하고 미래를 짐작케 하는 구심으로 유명하다.
또 하나의 해병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용맹성을 나타내는 독수리와 육전을 뜻하는 별, 바다를 상징하는 닻으로 구성된 해병대 마크가 있다.
이 마크는 오늘날 해병대의 군모와 군복, 그리고 부대기에 이르기까지 해병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늘 함께하는 벗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해병대 고유의 상징물이다.

■ 사라질 위기를 맞은 해병대 마크
해병대를 전역하고 인천고를 거쳐 1958년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미술계에서 한창 각광을 받던 이 화백은 1968년경 우연히 거리에서 옛 상관을 만나 그로부터 자신이 일생일대 최고의 역작으로 소중히 생각하던 해병대 마크가 바뀔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깜작 놀랐다.
이 화백은 당시 해병학교 시절 정훈참모였던 신수진 대령을 만나 지금 해병대사령부에서 마크가 잘못되었다며 새로 마크를 현상 공모 중이라는 말을 듣고 자초지종을 설명함으로서 하마터면 오늘날 해병대 마크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막았다고 했다.
해병대사령부는 해병대 마크를 설명한 책자가 소멸되자 마크 속의 별을 하늘의 별로 잘못 인식, 내용상 안 맞는다고 보고 새로 현상 모집을 했다가 뒤늦게 이 화백의 설명을 듣고 공모를 취소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 사병 출신으로 해정회 회원이 되다.
이 화백은 현재 대한민국학도의용군 인천북부지구 선무부장의 직함을 맡고 있다.
또한 해병대 정훈장교 출신들의 친목 단체인 해정회의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비록 사병 출신이지만 해병대의 상징인 해병대 마크를 만든 장본인이라 특별케이스로 가입이 되었다.
이 화백은 가끔 주위로부터 해병대 마크와 국방부 마크가 비슷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국방부 마크의 날개는 용맹을 상징하는 독수리의 날개가 아닌 공군을 상징하는 날개로 엄연히 다르다며, 또한 자신의 작품보다 뒤늦게 고안되었다면서 차별성을 강조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 화백은 “해병대 마크가 바로 영원한 해병을 상징하고 있다”며, “지금도 해병대 마크를 달고 다니는 해병대 장병들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했다.
한편, 이 화백은 2015년까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며 유·초·중·고등학교 건축설계 및 시공감리, 서양화와 조각 등 기독교 선교 미술 활동을 하다가 2016년 신병으로 귀국해 요양 중이다.
슬하에 4남 3녀, 7남매를 두고 있으며 아들 4명과 딸 1명이 현재 목사로 재직하고 있다. 【박흥배 보도국장】

□ 해병대 마크의 의미

▶ 리본
독수리가 입에 물고 있는 리본에 적힌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는 해병대가 존재하는 목적을 나타낸 글귀로서 ‘내 한 목숨 해병대라는 조직과 조국에 바친다’는 의미

▶ 독수리
용맹성과 승리의 상징으로 민족과 조국의 수호신이면서 전장에서 승리의 불사신이기를 갈망하는 해병대의 기상을 의미

▶ 별
지상전투를 상징하기도 하는 별은 조국과 민족의 생존을 위한 국방의무의 상징으로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해병대의 신성한 사명을 나타냄

▶ 닻
해양 또는 해군을 상징하기도 하는 닻은 기울어져 있는 모양으로 함정이 정박 또는 정선하여 해병대 고유의 임무인 상륙작전 개시를 의미

▶ 닻줄
단결력을 상징하는 닻줄은 와이어 줄로 한 가닥의 철사줄은 약하지만 여러 가닥의 철사줄을 모아 만든 와이어 줄은 해병대의 강하고 단결력을 나타내기 위한 의미

유화, 가시 면류관(Crown of Thorns) 특징

가시관의 거친 느낌을 유화물감 나이프로 표현했다.

 

 

 

박흥배 기자 phb7439@hanmail.net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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