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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김윤중·해병대사관 32기)의 자서전을 쓰는 까닭…

기사승인 2021.08.17  11: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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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가 쓴 할아버지 자서전 엿보기

김윤중(左) 회장과 손자 이재범 군.

■ 산수(傘壽)를 잊은 해병대정신의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의 자서전을 쓰는 이유는 식을 줄 모르는 할아버지의 열정을 말하기 위해서다.
산수(傘壽)의 노령을 잊은 채 나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관습을 항상 메모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각종 기사 자료를 열독하며 객관적 지식과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군에서 제대한 그날, 할아버지는 “내일부터 회사에 출근하거라”는 예상치 못한 당부를 하셨다.
손자를 사랑하는 ‘따뜻한 배려’에 감사하며 출근하자 키만큼이나 되는 신문 스크랩 철을 주며 읽으라고 하였다.
읽어나가던 중 앨빈 토플러가 기고한 “나는 신문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얻었고 낡아진 무용지식을 털어내게 됐다”는 고백의 글에서 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많은 기사를 스크랩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할아버지가 읽으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너 자신에게 셀프 멘토링(self-mentoring)해라”, “글로벌 시대에 가져야 할 트랜드와 키워드(keyword)에 주목하라”는 스터디 과정이었음에 새삼 감사했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노인은 꼰대’라고 무책임하게 내뱉었던 것에 젊은이의 한 사람으로서 머리가 숙여졌다.
할아버지가 해병대를 말할 때는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병대정신으로 일생을 살아왔노라” 하셨음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하고 담대하라” 장로, 해병대사관 32기 동기회장
石泉 김윤중 할아버지는 해병대사관 제32기 동기회장을 1987~91년까지 4년간 하고 2019년 다시 회장직을 맡으셨다.
그 해병대 열정과 동기애는 우리 가정의 자랑이고 행복이다.
할아버지는 1963년 해병대사관 제32기로 입교, 소위로 임관, 6여단 보급참모실 근무 후 68년 대위로 전역하여 서울 도봉구 소재 콘크리트 2차 제품사에 입사 후 그해 할머니와 결혼해 현재의 가계(家系)를 이뤘다.
당시 결혼 축의금을 밑천으로 1974년 삼원콘크리트(주)를 설립, 47년간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할아버지의 동기회 정관을 훔쳐봤다.
‘정관 15조(기금 고갈방지 대책) 4항에 “경조사 지원은 정회원 최후 1인이 생존할 때까지 지속토록 관리한다”와 5항에 “정회원이 사망하여 최종 7인이 생존하게 되면 7인위원회를 구성하여 기금관리를 잘하도록 한다”로 되어 있다.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 같은 표현으로 보이지만 해병대 동기생은 죽는 그날까지 동기애로 뭉쳐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동기회장인 할아버지의 여생은 마지막 날까지 동기생과 함께 할 것이 틀림없다.
즉, 할아버지는 영원한 해병대사관 32기로 이름이 기록될 것이고 그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실 것이다.
할아버지는 500년 유교 집안의 틀을 깨고 1949년 오순절교회에서 하나님을 영접하여 1977년 돈암제일교회 장로(예장) 장립 후 2010 은퇴하여 국가조찬기도회 이사로 되기까지 한남노회장, 서경노회장 등을 역임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다.
그러나 할아버지 신앙의 기본에는 가슴에 새겨 있는 빨강명찰의 사나이임을 읽을 수 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하고 담대하라. <중략> 그를 사랑하라. 용기를 내라. 내가 네게 능력으로 함께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이 곧 해병대정신과 해병대사랑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나의 성장열매, 행가모 회장 김윤중 할아버지
나의 할아버지는 행가모(행복한 가족모임) 회장이고 18명 가족 구성원의 큰 어른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실천한 일생이기에 가족과 친구를 중히 여기며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강인한 해병대가 되기 위한 꼭짓점은 ‘천자봉 구보’라고 말씀하며 목표를 향해 전력을 다해야 승리한다고 강조했다.
할아버지 아호 석천(石泉)은 ‘石은 돌이 돈이다. 泉은 (샘이) 복의 근원이다’로 石泉은 ‘복이 흐르는 원천이다’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선지 석천은 최선을 다해 달려온 성장의 열매를 사회에 환원시키고 함께 나누는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
즉, 산학협동 교육이념으로 석천장학문화재단을 설립, 후학들에게 성장의 열매를 나눠주는 중이다.
나를 낳아주신 원천인 石泉 김윤중 할아버지가 뿌려놓은 감사함이 나의 성장열매가 될 것으로 확신하기에 할아버지의 80여 년 일생을 반추해보며 자서전 저술을 통해 얻어진 교훈으로 나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노를 저어 나갈 것이다.
-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재범(미국 캘리포니아 Santan Barabaeo대 재중) 씀

□ 石泉 김윤중 회장은

石泉 김윤중 회장

1963. 해병대사관 제32기로 입교, 1968. 해병대 대위로 전역했다. 그해 삼원기업 감사로 사회 첫발을 디딘 후 74. 삼원콘크리트공업(주) 설립, 47년간 레미콘·아스콘·태양광발전 등 환경친화적 기업이념과 품질관리 향상에 앞장선 선도 기업으로 전남 순천·구례·곡성 등 지역사회에서 신뢰와 존경받는 기업인이다.
석천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산학협동정신으로 후진교육에 힘쓰는 베풂의 삶을 살고 있는 기독교인(장로)으로 슬하에 3녀를 낳아 3대까지 18명의 대가족을 이뤄 평강과 화평을 근원으로 한 가정교육을 성공시킨 인생의 성공자다.
이 글 저자인 큰 외손자 이재범(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재학) 외에 작은 외손자 김재중(미 보스턴대 1년 재학 중 해병 1266기로 입대 현재 해군 군악의장대)은 계룡대에서 근무 중이다.
1992. 품질관리분야 석탑산업훈장, 2004. 대통령표창, 2014. 순천시민의 상, 2016. 자랑스런 전남인의 상, 2019. 모범납세자포상 외 다수 수상.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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