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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우리는 할 수 있다!”

기사승인 2021.02.08  1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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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 현역들이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

새롭게 시작하는 2021년을 맞아 코로나19를 이겨내고, 긍정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해병대 현역들의 희망의 메시지를 게재한다. 국방일보 ‘병영의 창’ 코너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한 긍정 메시지가 해병대전우들에게 새로운 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해병대… 그리고 나의 마음가짐

▲ 김동영 중위(진)

해병대 2사단 선봉여단

나는 지금 대한민국 해병대 장교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한 나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몇 해 전, 나는 축구를 하다가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완전히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고, 어쩔 수 없이 수술을 받아야 했다.
부상에 대한 아픔과 고통보다도 내가 그토록 바라던 해병대 장교의 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픈 몸은 내가 짊어진 큰 짐과 같았고, 그로 인해 오는 좌절감은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 굴복하지 않았다. 해병대 장교가 꼭 되리라는 나의 집념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고, 어떠한 장애물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굳은 각오로 재활을 시작했고, 수술 전보다 더 건강한 상태로 돌아왔다.
십자인대 파열은 군 면제 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토록 군인을 고집했던 이유는 나의 굳은 신념 속에 있다.
나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라고 생각했고, 군인으로서 군복을 입고 국가를 지킨다는 사명감과 명예로움을 몸소 느끼고 싶었다.
교육훈련단에 입교한 그 순간부터 임관하는 날까지 쉬운 날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내가 되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고,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천자봉을 정복하고 빨간 명찰을 수여 받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그동안 고생했던 나의 피와 땀이 그렇게 오른쪽 가슴에 새겨졌다. 마음가짐의 중요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모든 일은 처음부터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작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나 또한 그랬다. ‘안되면 될 때까지’ 나는 이 표어를 보며 해병대 장교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속에 ‘할 수 있다’, ‘끝까지 가보자’라는 끈기와 용기의 마음가짐이 나를 이끌었다.
여기서 나는 멈추지 않는다. 새로운 꿈을 향해 더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안되면 될 때까지’ 도전하며 인생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 다 잘될 거야

▲ 박승범 상사

해병대 연평부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에 몰두하는 사이, 어느덧 2020년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1년 동안 우리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고 많은 ‘삶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지난 11월 해병대 연평부대로 전입한 것을 계기로, 무료한 일상을 전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여의도 면적의 2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서해의 작은 섬 연평도. 이 섬으로 전입하게 됐을 때 열악한 섬 생활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다 잘될 거야(All is Well)’의 마음가짐으로 연평도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것을 찾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핵심 도서를 지킨다는 군인으로서의 ‘남다른 사명감’과 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듯한 전우애’다.
불평하고 근심하며 하루를 보낼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고 힘들기만 했다.
하지만 연평도에서의 온정(溫情)은 겨울의 한파에도 따듯했고, 전방을 바라보면 불현듯 떠오르는 사명감은 나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의 걱정 중 8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과도한 걱정과 고민에 너무 많은 힘을 쏟고, 그것에 갇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이 한마디를 외쳐보자. “다 잘될 거야!”
지나친 걱정보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스스로를 응원하는 것이다.
미래 일들에 대한 막연한 근심보다는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대로 긍정의 의미를 찾고 이를 삶에 적용해 보자.
긍정의 주문을 외치며 오늘 하루를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
코로나19로 삶의 낙(樂)을 잃어버린 현재의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이 되지 않을까?
2021년 새해. 더 나은 대한민국의 내일을 위하여! “All is well, 다 잘될 거야!”

 

○ 빨간 명찰 주인공 되게 해준 격려 한마디

▲ 강기근 상병

해병대 2956부대

일본에서 살지만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애국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던 나에게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해병대 입대였다.
부모님께서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셔서 출생부터 초·중·고교까지 줄곧 일본에서 생활한 나는 일본 영주권자로 군 복무의 의무가 없었지만 해병대에 지원하고 입대했다.
대한민국 해병대에 입대하기로 다짐하고, 자신만만하게 입대했지만, 훈련소 생활은 쉽지 않았다.
“집에 돌아갈 기회는 지금뿐이다!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거나 집에 가고 싶은 인원은 10초 셀 동안 앞으로 나와라!”
훈련소 3일 차에 소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족한 한국어 실력이 걱정돼 고민 끝에 1~2초를 남기고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지만, 한국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런데 소대장님께서는 “괜찮다. 너라면 할 수 있다!”며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고, 그렇게 나는 자신감을 얻어 영원한 해병대가 됐다.
일본에서 접하지 못했던 군대 문화와 정신적·육체적으로 강인한 해병대정신을 배웠으며, 4대 핵심과제 구급법 평가에 중대 대표로 참가해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했다.
특히 개인 전투사격 간 우수한 명중률로 사격술 조교 임무를 수행한 것이 스스로에게 자랑으로 남아 있다.
맡은 바 임무에 솔선수범하면서 선·후임 해병 모두에게 모범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선임병으로서 병영문화혁신에 앞장서기 위해 전입 신병을 보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기에 부대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최근에는 중대에서 일본어 학습을 희망하는 인원에게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가장 원하던 해병대에 지원 입대한 것을 지금도 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입니다

▲ 손동진 원사

해병대 2사단 5여단

‘젊음과 열정을 이 조국에 바치리라’ 굳게 다짐하고 가슴에 태극기를 단 지 26년이 지났다.
임관 이후 해병들과 함께한 나의 26년에는 박격포 훈련 간 표적을 명중시켜 뿌듯했던 날, 자살 예방 교관으로 해병들에게 긍정의 마음을 심어주던 날, 힘든 훈련 속에서도 옆에 있는 전우들과 서로 힘이 되어주던 날들이 모여 있다.
젊은 날의 패기와 열정에 경험과 노련미가 축적되면서 부소대장, 행정관을 지나 어느덧 대대 주임원사 직책을 수행하게 됐다.
진정한 해병이 되기 위해 머리를 밀고 교육훈련단에 입대한 이후 고통을 참으며, 싸워 이기기 위한 전투기술을 익히고 부대 관리 전문가가 되기 위해 교범과 지침을 수없이 읽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끝없는 도전과 어려움 속에 뛰어들어 비로소 내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되면서 가슴의 태극기가 부끄럽지 않게 됐다.
후배 부사관들은 내게 군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묻곤 한다. 물론 쉬웠던 적은 없었다.
가족을 챙기지 못한 미안함, 나를 챙기지 못한 안타까움 등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고 없이 군 생활을 하고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해병들을 보며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받았다.
우리 부대는 최전방 경계작전 부대다. 최근 급박하게 변화하는 안보 상황에서 숨 가쁘게 달리는 전우들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국민의 시계와 반대로 돌아가는 우리의 시간은 해질녘부터 시작이다. 모두가 잠든 밤을 지새우며 가족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나와 해병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 집중한다.
전투복을 입고 있는 군인들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여러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들이지만 우리가 있기에 단잠을 청할 수 있는 나는 이 짧은 글을 통해 우리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 청춘이여, 도전하고 경험하라!

▲ 노재선 상병

해병대 1사단 포병여단

젊음과 청춘은 다른 말이다. 젊음이 육체에 관한 말이라면, 청춘은 영혼과 마음가짐에 관한 말이기 때문이다.
입대 전의 나는 청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불확실한 미래는 도전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마저 잡아먹었다.
나는 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군 복무는 내가 무언가에 도전해 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해병대를 선택한 이유였다.
비록 몸이 건장한 편은 아니었지만,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힘들어도 악으로 버틸 정신력 하나면 해병대 입대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도전의 첫걸음이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 내게는 다양한 경험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다.
주특기를 갈고닦는 실전적인 교육 훈련부터 수영, 독서, 공모전 등 자기계발에 이르기까지 남들은 이미 경험한 것들이 내게는 생소했다.
그래서 농부가 정성 들여 논과 밭을 일구듯 차근차근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일과 후 시간을 투자해 수영을 하며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고, 독서를 통해 창의적인 사고력을 길렀다.
막히는 부분은 주위 선후임과 동기들에게 도움을 청해 함께 해결해 나갔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가 그에 미치지 못해 실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도전하는 과정에서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일념으로 임했고, 그것은 다른 쪽에서 좋은 결과를 만드는 추진력이 됐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도전하기를 주저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실패는 목표를 향한 경험이 될 것이고, 꿈꾸며 도전하는 그 순간에 비로소 우리의 청춘은 시작될 것이다.

 

○ 국민의 반창고가 되어준 따뜻한 해병대

▲ 박병탁 일병

해병대 1사단 포병여단

해병대는 국가의 부름에 가장 먼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부대다.
정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사명 아래 언제나 국민을 먼저 생각하기에, 작년 여름 사상 최악이라 불리는 태풍이 포항을 휩쓸고 간 이후에도 해병대는 발 빠르게 대민지원을 준비했다.
우리 대대 또한 포항 구룡포로 지원을 나갔다. 트럭을 타고 가며 겹겹이 쓰러진 나무들을 보니 구룡포 주민들의 안위가 걱정됐다.
예상대로 태풍의 피해는 엄청났다. 풍랑에 유목과 부표들이 떠밀려와 해수욕장을 메웠고 트럭 크기의 아스팔트 조각과 몸통만 한 바위들이 부둣가 도로를 덮었다.
과거 구룡포의 정겨운 과메기 내음이 아닌 물고기와 갈매기 사체, 쓰레기가 풍기는 악취만이 구룡포를 맴돌았다.
트럭에서 하차하니 하늘은 뜨겁게 타올랐다. 한순간에 무너진 삶의 터전을 보며 대자연의 힘에 무기력함을 잠깐 느꼈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지붕이 사라진 컨테이너를 철거하고 해안의 쓰레기들을 한곳에 모아 마대에 담으며 환경정화 활동을 했다.
해변과 도로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모래가 뒤덮였지만, 작업이 진행되면서 바닥의 아스팔트가 조금씩 드러났다.
대원들과 함께 삽으로 퍼내고 널빤지로 밀어내며 원래 도로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해병대 장병들의 수해 복구 노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길 바란다.
이번 태풍은 전국적으로 큰 피해를 남겼고, 수재민들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 군의 도움과 국민의 격려가 절실한 시기라 생각한다.
재난을 극복하고 새로 시작할 용기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해병대는 언제나 가장 힘들고 위험한 곳에 제일 먼저 앞장서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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