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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교수의 테마기행- 세계의 전쟁 유적지를 찾아서

기사승인 2021.01.04  11: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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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낙동강 최후전선, 경남 함안

2013년 4월 이천구 대위(39사단 중대장)는 경남 함안 여항산 유해 발굴작업을 하면서 다시 한번 전쟁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불과 1달 남짓 기간에 30구의 전사자를 찾았다. 온전한 시신은 거의 없었다. 추정컨대 쏟아지는 포탄으로 몸은 갈가리 찢어졌고 뼛조각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탄통, 철모, 신발 밑창 등도 숱하게 발견됐다.

전쟁 참상을 전해주는 여항산 함안 민안비.

■ ‘신이 저주한 산’으로 불려진 여항산
1950년 8월, 광주·진주를 거쳐 북한군 6사단은 마산을 눈앞에 둔 함안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함안의 여항산(770m)·서북산(738m)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사실상 이곳은 UN군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 미 25사단, 민기식 혼성부대, 전투경찰대, 일부 학도병 등 너무나 위급한 상황이라 정식 편성이 안된 임시부대들이 적과 맞섰다. 남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이 고지들은 주인이 19번 바뀌었다. 포격과 폭격으로 산꼭대기는 완벽한 황토색으로 변했다. 오죽하면 미군들은 이 고지들을 ‘신이 저주한 산(갓뎀산)’으로 불렀을까?

■ 처절한 격전지가 된 함안
1950년 7월 25일 화개장터에서 북한군과 격전을 치른 여수지역 학도병들은 진주를 거쳐 8월 초 마침내 함안에 도착했다.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던 이들은 어린 학생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는 사연을 알게 된 미 25사단에 합류하게 됐다. 약 한 달 반 동안의 처절한 격전은 결국 아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함안군은 여항산에 ‘6·25격전 함안 민안비’를 건립하여 해마다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 여항면의 봉화산(674m) 정상에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5기의 봉수대 터가 있다. 수백 년 전의 군사요충지가 현대전쟁에서도 피아간 사투를 벌이는 격전장이 되는 것을 보면서 전쟁의 역사는 역시 되풀이되는 것으로 느껴졌다.

화개장터 뒷산 학도병추모비(멀리 섬진강이 보인다).
남해 외적침공을 알려주는 여항산 봉수대.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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