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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의 해병대정신은 뜨거웠다”

기사승인 2020.12.07  14: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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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평도 포격전 10주기

연평도 포격전 당시 화염 속에서 사격 준비를 하고 있는 해병. 포격 직후 연평부대 정훈장교 이성홍 대위가 촬영했다.

해병대원들은 단 한 명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조건 싸워 이기겠다” 의지 충만했을 뿐…


2010년 11월 23일, 서해. 북한 개머리 해안에서 포격이 시작됐다.
북한의 기습 포격에 북방한계선(NLL)과 인접한 연평도는 불바다로 변했다.
북한군이 쏜 포탄이 빗발치는 극도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연평부대 해병대원들은 불굴의 의지로 반격을 개시했다.
해병대는 북한군의 포격 도발이 시작된 이후 13분 만에 대응 사격을 감행, 북한군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해병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섬 곳곳에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민간인과 군인 가족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키는 등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의무에 충실했다.
그날 오후 2시 34분, 북한은 해안포기지에서 76㎜ 평사포, 122㎜ 다련장로켓포, 130㎜ 해안포, 240㎜ 방사포 등을 이용해 포탄 170여 발을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를 향해 포격했다.
해병대는 13분 후인 오후 2시 47분, 북한의 1차 포격이 잠잠해지자 대응 포격을 시작해 북측 무도 포진지 쪽에 50발, 개머리 포진지 쪽에 30발 등 총 80여 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포격에 우리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고, 해병대원 부상자 16명이 발생했다.
북한의 피해는 사망 10여 명, 부상 3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날 북한의 포격은 백령도 해역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 만이었다.
또한 북한이 남측 영토를 향해 직접 공격을 하고 민간인 사상자를 낸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연평부대 포7중대 중대장이었던 김정수 소령은 “적의 기습 공격에 맞서 더는 도발하지 못하게 작전 목적을 달성했기에 당연히 승리한 전투”라며 “당시 해병대원들은 단 한 명도 두려움에 떨거나 물러선 적이 없이 무조건 싸워 이기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다”고 회고했다. 【고명석 기자】

 

고명석 기자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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