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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교수의 테마기행- 세계의 전쟁 유적지를 찾아서

기사승인 2020.11.13  11: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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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자부심 가득한 이집트의 전쟁 역사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고 5,000여 년 전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졌던 이집트의 옛 영광은 사라졌다. 오히려 오늘날 60여 년 전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이 뭇 이집트인 선망의 대상이 되는 나라로 우뚝 섰다. 역사는 이처럼 돌고 돈다. 이집트의 개인 연 국민소득은 한국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의 조국수호 역사에 대한 자부심은 한국의 10배 수준인 듯 하다. 비록 가난하지만 선조들의 희생만은 기억하는 민족성은 이집트 곳곳의 군사박물관과 전쟁유적지에 나타나 있다.

▲ 신종태

조선대 군사학과 초빙교수

■ 이집트의 자존심 시타델성 박물관
카이로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시타델성. 수백 전에 만들어진 약 30m 높이의 견고한 성채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성곽 높은 곳에 오르면 카이로 전체가 조망된다. 특히 성내의 이집트 국립군사박물관은 비잔틴·아랍·십자군·이집트군의 전쟁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 입구 벽에 1974년 대대적인 보수공사 시 비용을 지원한 북한 당국에 감사한다는 기념판이 붙어 있다. 1970년대의 이집트·북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해외 유학을 마치고 뒤늦게 입대를 한 이집트군 안내병사는 김정은 나이가 자신과 비슷하다며 “I am King!”이라는 농담을 거침없이 한다. 현재 이집트는 고교졸업자는 2년, 대학졸업자는 1년간 군 복무를 한단다.

▲ 시타텔에서 본 카이로 시내 전경.

■ 수에즈 도하작전과 이집트인의 자부심
1973년 10월전쟁 시 수에즈운하 도하작전 성공은 이집트인들이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전쟁 역사로 부각되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피 눈물 나는 훈련으로 이스라엘군을 처음으로 제압한 전쟁이다. 따라서 이 전투는 전시실에서 요도, 사진, 파노라마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10월전쟁 당시의 각종 장비와 무기들로 꽉 차 있다. 수많은 어린 학생과 시민들이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승전역사를 보면서 이집트인의 자부심을 키우고 있는 듯 했다.

▲ 국립군사박물관 입구 전경.

 

▲ 국립군사박물관 내 이집트군 병사 동상.

■ 이집트 현대사 최대의 영광 ‘10월전쟁’
주요 행정기관이 집중되어 있는 카이로 중심 거리에는 10월전쟁 승전관이 있다. 이 전쟁은 이집트인 자존심이요, 국가 정체성을 다지는 이집트 현대사의 핵심이다. 무적 이스라엘군이 초전에 대패한 전무후무한 전쟁이었다. 야외 전시관 중심부에는 이집트국기를 들고 수에즈운하를 작은 단정을 타고 당당하게 건너가는 병사들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또한 당시 전쟁에서 사용된 많은 소련제 장비들이 진열되어 있다. 승전관 안 시설들은 이집트-이스라엘 간 숱한 전쟁 역사를 묘사했다.

▲ 10월전쟁 당시 수에즈운하를 도하하는 이집트군 동상.

■ 박물관에서 본 100년 이집트 공군 역사
카이로 시내 중심에 공군박물관이 있다. 1932년 최초 5대의 영국제 항공기 도입으로 시작된 이집트 공군 역사는 거의 90년에 가깝다. 박물관은 1973년 중동전쟁 시 이집트 전투기 활약상으로 청소년들의 가슴을 들끓게 만든다. 이런 홍보물로 자연스럽게 이집트 최고의 인재들에게 국가간성의 꿈을 키우도록 유도한다. 야외에는 다양한 항공기, 헬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견학 마지막 코스는 중동전쟁 전사자 및 훈련 중 순직 조종사 추모관이다.
과거 이집트는 오랫동안 공산권 국가와 긴밀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에는 소련의 전폭적인 군사지원으로 전쟁을 치렀다. 물론 오늘날 이집트 정부는 친미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군사 장비도 서서히 서방세계 무기체계로 전환 중에 있다. 최근 들어 한국 정부도 이집트 해군에 1,200톤급 초계함을 무상으로 지원해 주기도 하였다.
이집트인들의 삶의 수준은 한국인들과는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집트에 비해 한국 청소년들이 조국 수호의 중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학습 기회는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보다 양식 있는 한국인들이 ‘천하수안 망전필위’의 교훈을 되새겨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 1973년 중동전쟁 당시 출격을 앞둔 소련제 미그기 재연.
▲ 이집트공군 전몰장병 추모제단.

■ 불황 타개를 위한 식당 주인의 기막힌 아이디어
카이로시내 전망이 가능한 곳에 유일한 성내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식당 안은 텅텅 비어 있다. 필자가 들어가니 저승 갔다가 다시 살아 온 낭군님을 만난 신부처럼 매니저와 종업원들의 입이 찢어진다. 한국인이라 하니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맛있어요.” 그동안 갈고 닦았던 온갖 한국말이 다 나온다. 음식을 주문하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대한민국 애국가가 한국어로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그것도 1절에서 4절까지 연주한다.
해외 식당에서 방문객 국가를 방송으로 연주하며 환영해 주는 식당은 처음 봤다. 매니저 이야기가,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가끔 식당 밖의 한국인들이 가슴에 손을 올렸다가 식당으로 들어와 음식을 주문한단다. 불황 타개를 위해 고심하다가 생각해 낸 매니저의 영업 아이디어란다. 물론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 애국가 테이프도 가지고 있단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의 실천을 이 식당 매니저가 잘 보여주는 듯 했다.

■ 패전국 군인은 죽어서도 서럽다
박물관 부근에는 영연방국가 전사자들이 안장된 묘역이 있다. 모래사막 위에 빼곡히 서 있는 묘비 사이에는 잡목들이 군데군데 솟아 있다. 곳곳의 승전기념탑들이 묘역을 지켜보며 나그네 발길을 붙잡곤 한다. 또한 이집트 정부는 해마다 참전국가 및 전몰용사 후손들과 같이 대대적인 추모행사로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패전국 독일·이탈리아군 장병들은 죽어서도 서럽다. 그들은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사막 가운데 묻혀 있다. 누가 그곳까지 가서 참배할지 궁금하다. 군인은 죽어서도 이렇게 승자와 패자가 받는 대접이 다르다. 그래서 모든 국가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무조건 전쟁에서 이기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연합군 전사자 묘역. 독일·이탈리아군 묘역은 다른 곳에 있다.

■ 알렉산드리아의 카이트베이 요새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BC 333년 이곳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였고 과거 이 나라의 수도였다. 이집트 대문 역할을 하는 수에즈운하 북단의 포트사이드. 그러나 이 항구 도시들도 전쟁의 참화를 피해 나갈 수는 없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알렉산드리아는 카이로에 비해 훨씬 정돈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알렉산드리아 항 끝부분에는 시퍼런 지중해를 지켜보는 웅장한 성곽이 버티고 있다.
이곳은 항구의 파수꾼 카이트베이 요새다. 요새 내부에는 이집트 해군역사와 이 항구의 전쟁사를 전해주는 해군박물관이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많은 전쟁이 있었다. 또한 이 도시는 과거 영국해군의 모항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해안도로 옆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중동전쟁에서 전사한 이집트 해군 장병들을 위한 대형추모탑이 말없이 지중해를 지켜보고 있다.

▲카트베이 요새 전경.
▲해안도로 근처의 이집트군 전몰장병 추모탑.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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