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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의) 비판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승만의 위대함을 말하려 쓴 것이다

기사승인 2020.09.01  11: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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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강, 한국교회핍박 -이승만 저-

이승만 저 ‘한국교회핍박’은 1913년에 출판된 107년 된 책이지만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문이 오는 스테디셀러다. 100년 전 저서가 고전이 아닌 오늘의
이야기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이 책이 영원불변한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바탕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승만 저, 한국교회핍박 원본
현대문으로 풀어쓴 한국교회핍박 (2008, 청미디어 발행)

■ 들어가는 말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김원웅은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청년시절부터 일본에 대한 철저한 배척사상을 가졌다. 그는 일본을 향하여 더 논리적이고 이론적으로 사실에 입각한 공격을 했다. 그런 비판은 이승만을 잘 알지 못한 무지한 소치여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1913년 세계를 향하여 일본을 말하는 이승만의 저서를 특별히 해설하는 이유는 김원웅의 비판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승만의 위대함을 말하려 쓴 것이다.

■ 집필 직전까지의 이승만 발자취
이승만은 38세인 1913년 하와이에 정착하여 이 책을 출간했다. 9년 전인 1904년에 독립정신을 쓸 당시 죽음의 형틀에서 하나님을 영접했던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깊은 신앙을 가졌던 그는,
29세 되던 해(1904년) 특별 사면되어 고종의 밀사 자격으로 출국, 하와이에서 윤병구 목사와 합류하여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를 거쳐 워싱턴D.C.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승만은 조지워싱턴대학교 2학년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30세가 되던 해(1905년) 한국에 선교사로 왔었던 휴딘스모어 상원의원의 주선으로 존 헤이 미 국무장관과 30분간 면담을 하게 된다. 또, 그해 4월 23일에는 워싱턴D.C.의 커베넌트 장로교 류이스 햄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8월 5일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을 윤병구 목사와 함께 면담했다.
32세 되던 해(1907년) 조지워싱턴대 졸업, 그해 9월 하버드대 석사과정에 입학,
33세 때(1908년) 프린스턴대 박사 과정에 입학, 정치학과 국제법을 공부하면서 지도 교수인 월슨 총장(나중에 대통령)의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35세 때(1910년) 그는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 학위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윌슨 총장으로부터 직접 수여받았다. 그해 박사로 탄생한 이승만은 런던, 파리, 베를린, 모스크바, 만주를 거쳐 5년 11개월 만에 서울역에 도착한다. 은둔의 나라 청년이 생전 처음 미국과 유럽 등 문명 대국을 모두 밟으며 배운 바를 익히고 확인하였고 미국 조야의 든든한 학맥인 조지워싱턴, 하버드, 프린스턴 대학 출신이자 세례를 받은 완전한 기독교인이 된 것이다.
35~37세 때(1910년~1912년) 한국 YMCA 한국인 총무와 청년학교 학감으로 취임, 전도와 교육 사업을 하다가,
37세 때(1912년) ‘기독교 105인 사건’으로 체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니애폴리스의 감리교 총회에 참석하고 대통령 후보였던 윌슨을 만나 그의 추천서를 받아 워싱턴 등지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다.
또 그는 미국 최고 권위지 워싱턴 포스트에 3차례에 걸쳐 언론플레이를 했다. ① 1905. 1. 15 일본의 한국 침략을 폭로하는 인터뷰 ② 1907. 6. 2  YMCA 연설 기사 ③ 1912. 11. 18 인터뷰 기사

■ 일제 억압에 있는 우리 민족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주려고 쓴 책
이 책은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으로 갈 길을 몰라 할 때인 1913년 이승만 박사가 쓴 책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가장 두려워했던 세력이 한국의 교회다. 일본은 한국 교회를 말살하려고 ‘기독교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목사들을 처형하고 교회를 탄압했다. 이승만은 이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생명을 주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키 위해 집필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 사람들과 외국인들의 통상과 교류를 차단하고 그들의 만행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기독교는 전 세계를 통한 통로가 열려있기 때문에 일본의 이런 정책이 아무 소용없었으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이승만은 글을 통한 저항 운동과 민족을 향한 외침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 책은 전 세계와 억압에 짓눌려 있던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을 통한 긍정적 메시지이다.

■ 일본, 한국교회핍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것에 대하여 세계는 어떤 지탄이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본이 한국을 보호해준다는 미명하에 양의 탈을 쓰고 이리의 발톱을 숨기고 있었다. 일본은 세계 침탈의 야욕을 꿈꿨기에 세계적 여론을 가장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감춰지고 일본이 득세했던 시기에 그 이리의 발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통로는 조선 땅에 들어와 있는 치외법권의 대우를 받고 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이었다. 그 선교사들은 당연히 조선인 편에 들어 있기에 한국 교회는 그들에게는 목에 가시 같은 존재로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암적인 존재였다.
“일본은 한국 땅덩어리는 먹었지만 정신만은 먹지 못했다. 그것은 한국교회 때문이다”고 자각한 일본은 한국 교회를 탄압하기 위해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에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그들은 애국계몽 운동가들인 교회지도들이 연루되었다 하여 윤치호, 양전백 등 123명을 체포, 구속하여 이른바 ‘기독교 105인 사건’을 일으켰다.

■ 이리의 발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책
이 사건이 해외로 알려지자 세계 각국의 비판과 여론이 일본에게 집중되자 미국의 각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에 대하여 일본이 고민에 처한 사실과, 이승만이 직접 목격하거나 언론에 보도된 자료와 이 사건을 조사하러 파송되었던 미국 각 교회 대표들의 보고서나 선교회 자료들을 근거로 일본이 어떻게 한국교회를 핍박하는가에 대한 팩트를 총정리 한 내용 외에 다음과 같은 기술을 했다.
▲ 이승만은 일본의 회유와 핍박과 외교공작을 했지만 그 고난을 이겨내 승리하는 기독교정신을 멸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썼다.
▲ 일본이 한국에 대한 경제적 고립정책도 기독교 앞에서는 허사가 될 것이며 오히려 한국 기독교를 통해 그들의 실상을 외국에 더욱 알릴뿐이다.
▲ 고난 중이 있는 한국교회를 선도해나갈 기독청년회의 왕성한 활동과 일본이 그들을 어떻게 회유했는가를 설명했다.
▲ ‘그들이 조작한 기독교 105인 사건 재판 과정은 전 세계의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하며 가장 피해 입은 평안도 선천의 기독교 박해사실과 역동적인 기독교 청년들의 활동을 썼다.

 

● “일본이 조선 땅 덩어리는 먹었지만 정신은 먹지 못했다. 그것이 한국 교회 때문이었다”
-그 이유 8가지 요약-

① 교회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이는 장소이다
교회는 민심의 동향이 모이는 곳이다. ‘천국을 먼저 구하라. 모든 것이 다 따라 생기리라.’라는 믿음 위에 애국가 대신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찬송가를 불렀다. 밀정들이 각 교회에 침투하여 목사 설교를 일일이 감시하였다. 어느 목사가 설교 중에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설교하자, ‘네 원수라 함은 누구를 지목하는가?’며 목사를 감금하기도 했고, 또 악독한 계모 밑에서 자라며 인생 역전을 설명하는 목사에게는 이 계모는 은근히 일본을 비유했다고 하여 3일간 감금하기도 했고, 청년들 연극에서 구약시대 모세가 이집트 왕의 속박에서 벗어나 홍해를 걷는 장면을 들어 은밀한 비유가 있다고 하여 청년들이 갖은 곤욕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던 것은 자유로운 모임과 말과 문화 활동에 대한 일본의 한국 교회에 대한 경계였기 때문이다.

② 교회 안에는 왕성한 활동력이 있다
원기의 쇠약이 만병의 근원인 것과 같이 백성들의 활동력이 쇠함으로 모든 부패와 골육상잔의 폐단이 겹겹이 생기게 된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한량없는 활력을 충만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리라’라는 성경대로 우리는 두려울 게 하나도 없다. 함경도, 강원도 지방의 전도사인 어떤 이는 일본 관리들에게 숱한 고초를 당하고 인천 앞의 섬으로 귀양 갔는데 그의 모습은 여전히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다. 오히려 일본 관리들에게 ‘일본도 예수를 믿어야 진정한 강국이 될 것이다.’라고 담대히 말했다. 결국은 일본인들도 모두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고개를 숙였고, 핀슨 선교회 총무(미국 남감리교 선교회 파송)가 223명의 사건 조사를 위해 감옥에 갇힌 이들을 일일이 만났으나 그들은 조금도 겁에 질린 모습이 아니었다며 이토록 굳센 모습은 미국에서 보기 어려운 일이라며 믿는 이들을 깊이 평가했다.

③ 교회는 합심하는 능력이 있다
모든 정파나 인간관계에는 항상 논쟁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오랜 당쟁으로 그 현상이 더 했다. 남을 자신의 몸 같이 사랑하는 교인은 이런 시기, 질투, 다툼, 죄악을 회개한다. 남의 기쁨과 슬픔을 먼저 생각한다.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 형제, 자매가 서로 사랑하기를 힘쓴다. 그러므로 합심하게 된다. 성경에서는 ‘예수는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다 가지니 그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참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말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한 몸의 지체이다. 그러니 일본인들 보기에 어땠을까?

④ 교회는 원기를 유지하게 된다
옛 성현들은 도덕만이 국민의 원기를 배양한다고 했다. 원기가 빠지면 인심이 사특해지고 품행이 부패하여 음탕, 방탕하게 된다. 그 결과 주색잡기, 마약, 담배에 의지하게 되어 결과는 두뇌를 망친다. 일본인들은 한국에 이것들을 많이 전파하고 있으며, 담배의 해는 특히 매우 심하다. 일본은 담배를 정부 전매물로 만들어 어린이 두뇌의 손상과 윤리적으로 큰 해를 끼치고 있다. 길선주 목사는 담배는 해로운 것으로 피우지도 말고 담배 회사에서 일도 말라고 했으나, 일본 순사는 담배는 일본 정부가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는 곧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탄압했다. 기독교가 이런 풍토를 개선하고자 하는 일에 일본은 항상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⑤ 교회는 청년 교육에 힘쓰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제 정치 하는 나라나 상전들은 백성과 노예를 교육시키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학식이 곧 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일본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보급하고 일본 경제 욕구를 부흥키 위해 저급기술노동자양성실업 교육을 시켰고 외국에 유학하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한국사 폐지와 고등학문도 폐지하여 지식의 함양을 저지했다. 그렇지만 기독교 학교에서는 산술, 지리, 역사, 화학 등 신학문들을 우리말로 가르쳤고, 고등학문을 가르쳤다. 숭실대, 배재학당, 연희전문 등을 설립했다. 이 같은 기독교 계통 학교는 일본의 법제도에서 벗어나 독립자격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일본이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⑥ 교회는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
일본은 천황을 신격화 하고 이를 반대하면 불충한 백성으로 여겨 천황을 하나님과 같이 섬기기를 강요하고 있다. 어떤 기독교 사립 여학교에서는 천황탄신일에 천황 사진에 절하는 것을 모두 불이행했다. “누가 은근히 시켰는가?”하고 일경들은 다그쳤지만 대부분이 교인인 학생들이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첫 계명을 이행한 것뿐이었다. 일인 교사들은 그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경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회유했지만, 믿는 학생들은 “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자퇴하는 등 우상을 섬기지 않으므로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는 것이다.

 ⑦ 덕성과 정의를 지닌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다
외국에서 파송되어 오는 선교사들은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도를 갖고(敬天愛人) 문명이 발달한 학문과 지식으로 우리와 함께 살며 환란과 고통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아이를 때리고 을러 물건을 뺏고 복종 시켰다고 하자. 이웃집의 크고 힘도 센 사람이 그 아이를 어루만지고 위로한다. 그 아이는 자연히 큰 사람을 따른다. 나는 그가 원수같이 보일 것이고, 그를 욕보이려 할 것이다. 그것이 일본과 선교사의 관계다. 일제 강점기에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나라에서 일인들에게 치외법권을 포기했으나 미국만 안 했다. 따라서 미국 선교사들은 치외법권에 있기 때문에 일인들은 그들이 목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⑧ 교회는 혁명 사상의 풍조가 동양에 전파되기 때문이다
혁명이란 백성이 일어나 정부를 뒤집고 자신의 뜻대로 다시 조직하는 것을 말하며 동양의 역사에는 혁명이 없었다. “병든 자와 죄에 빠진 자들을 불쌍히 여겨 나의 뒤를 따르라. 나는 의로운 자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요, 잃은 양을 찾으러 옴이라. 의인은 성한 자가 아니고 병든 자에게 필요한 것이다.”라며 예수님은 33년 동안 전도하였다. 일본이 보기에는 ‘한국 교회는 독립 사상을 배양하는 곳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많은 한국 교회는 장래 혁명을 주창할 것’이라며 경계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문화는 중국→한국→일본 순으로 영향권이 전파되었다. 그래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한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간 집인 한국을 차단하여야 일본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은 “중간 집에 불길이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중간 집에 불붙기 쉬운 물건은 급히 치워야 한다.”라는 비유를 들어 그들의 흑심을 설명하며, “따라서 한국 교회를 통제하는 것이 그 이유다.”라고 썼다.

 

● 책 끝머리 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모든 악하다는 말로 비방하면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가 하늘에서 상 받을 것이 크니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를 이 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이 말씀이 어찌 일시적인 위로의 말씀인가.”라고 썼으나 이는 마태복음 5장 11~12절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만일 일본이 한국 교회를 아주 없애려 한다면 로마의 네로가 실수한 것 같이 될 것이며 대원군과 청의 서태후와 같은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침내 한국 교회를 더욱 공고케 할 따름이니 이는 기독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진 까닭이다.’라고 끝맺었다.
 

- ‘한국교회핍박’ 해제, 발행인 신동설 씀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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