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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주저하는 청춘들에게

기사승인 2020.07.14  10: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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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길 박사의 명쾌한 해답은…

■ 젊은이들은 어떤 꿈을 꿔야 하나요?
젊은이들은 큰 꿈을 지녀야 한다고 합니다. 젊은이가 꿈이 없는 것은 생명이 없는 것이고 꿈을 가지는 것은 젊은이만의 특권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대체 젊은이들은 어떤 꿈을 꿔야 하는 걸까요?

▲ 김동길 박사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라는 말을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자주 합니다. 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활력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오늘은 신세가 처량하더라도 끊임없이 노력해서 성공하면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꿈을 가지라고 후배들에게 권면합니다.
꿈이 전혀 없이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허망한 꿈은 그나마 간직했던 우리의 조그마한 행복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재담가로 알려졌던 영국의 문인 사무엘 존슨이 이런 말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 짧은 한 마디를 수없이 되뇌며 이날까지 살아왔습니다.
“감상주의로는 안 된다(Sentimental Nonsense!)”

무쇠로 만든 솥은 뜨거워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식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밥이 오랫동안 따끈따끈하게 그 솥에서 남아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냄비에서 끓이는 음식은 빨리 바글바글 끓지만 식는 데도 시간이 별로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옛날 금연운동이 한창이었던 시절에 시골에 다니면서 금연 강연을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성미가 급한 많은 젊은이가 강연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가지고 있던 담배를 꺼내 당장 꺾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답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금연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담뱃대는 꺾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급하게 담배를 꺾어버렸던 많은 젊은이는 담배를 끊고 2~3일은 버티다가 그 이상 금연을 하지 못하고 장터에 가서 몰래 다시 담배를 사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Sentimental nonsense!”라는 말이 내 입에서 절로 튀어나옵니다.

나도 젊어서는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 영국의 캠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을 소개하는 책자를 보고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캠브리지 대학에 유학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6·25전쟁이 터져서 피란을 가야 했고 정상적으로 공부를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에 유학을 간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피란 시절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여학교에 영어 교사가 되어 분주한 나날을 보냈을 뿐입니다.
그 후 대학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지만 공부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세월만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어느 조그만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 그 대학에 유학 가는 것이 고작이었고 미국의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기는 했지만 캠브리지 대학으로의 유학의 꿈은 이래저래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많은 젊은이가 젊어서 공통적으로 지니고 사는 꿈 하나는 애당초 가져보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딸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며보자는 꿈이었습니다. 나는 결혼이나 가정이 한 인간에게 큰 구속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결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돌아서서 내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나는 나의 자유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라도 할 용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결혼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가정적 행복을 외면하고 이날까지 살아왔습니다. 60세가 넘었을 때 어떤 재벌이 자기가 도와줄 터이니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라고 권면했을 때도 나는 내가 정신이 온전한 동안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사양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해서 얻은 자유를 지금까지 지키면서 살다가 오늘은 무기력한 한 노인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자유를 지키며 살겠다는 생각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습니다. 나의 청춘의 꿈은 다 사라졌지만 나는 아직도 자유라는 꿈을 안고 이렇게 석양에 홀로 서 있습니다.

그대는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무 꿈도 없이 나날을 맞이한다면 은근히 걱정입니다. 꿈이 없는 개인, 꿈이 없는 겨레에게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개꿈’이라는 말이 많이 나돕니다. ‘개꿈’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꿈이어서 눈 뜨면 다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미국의 위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큰 좌상이 있는 그 기념관 가까이에 우뚝 서서, “나에게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그 말을 몇 번 되풀이하면서 전 세계를 향해 자기에게 꿈이 있음을 분명히 하였고 그의 꿈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는 그 꿈 덕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이 낳은 세계적 위인 5인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워싱턴, 제퍼슨, 프랭클린, 링컨과 함께 영웅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는 미국 땅에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꿈은 흑인 오바마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대통령은 세종대왕처럼 될 것을 꿈꾸세요. 군인은 이순신을, 학자는 퇴계를, 종교인은 원효를 꿈꾸고 따라가세요. 대한민국이 다시 살아나려면 국민 각자가 그런 꿈을 가지고 하루를 맞이해야 합니다. 천 년의 꿈을 안고 오늘 하루를 살면 됩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던 1861년 예일 대학의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러셀 콘웰은 정통적인 뉴잉글랜드 가문에 태어난 준수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링컨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전쟁의 이모저모를 생생하게 기록하여 국민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제대하고 나서는 뉴욕 트리뷴과 보스톤 트레블러의 기자가 되어 세계를 무대로 큰 활약을 하였습니다.
그는 터키의 안내자를 앞세우고 중동 지역을 여행하다가 그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콘웰의 일생뿐 아니라 미국 역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페르시아의 부농이던 알리 하페드는 한 불교 승려에게서 굉장한 다이아몬드가 묻혀 있는 곳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기름진 농토를 버리고 그 ‘보물의 밭’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맸습니다. 그러다 알리는 지칠 대로 지쳤을 뿐 아니라 젊음과 재산을 다 잃고 무일푼이 되어 고향 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는 늙고 병들어 초라한 신세가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알리가 찾아 평생 동안 헤매며 재산을 탕진한 그 ‘다이아몬드 밭’은 바로 알리의 뒷마당에 있었답니다. 보물을 자기 집 뒤뜰에 묻어두고 이 어리석은 사나이는 방방곡곡을 찾아 헤매었으니 진실로 가슴을 칠 한심하고 어리석은 한평생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가슴 깊이 간직한 콘웰은 미국에 돌아와 보스턴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다이아몬드 밭’이라는 그의 강연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그는 생전에 같은 제목으로 6,000번 이상의 강연을 하였고 700만 달러의 교육 기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일곱 명의 학생을 모아 라틴어 교육을 위해 시작한 강습소는 자라고 또 자라서 필라델피아의 템플대학교가 되었는데 50년 전에 이미 재학생 수가 2만3천 명이나 되고 교직원 수도 1,000명이 넘었습니다. 꿈의 열매를 멀리서 찾으려 하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찾으세요. 성공의 비결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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