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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 조봉암’ 물음표 뗄 수 있는가?

기사승인 2020.06.02  17: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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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舊소련 극비문서로 밝혀진 조봉암의 실체는? -주간조선 5.18. 인용-

주간조선이 공개한 1968년 9월 12~13일 김일성 당시 조선노동당총비서 겸 내각 수상과 방북한 드미트리 폴랸스키 소련 내각 부의장과의 대화를 기록한 구소련 외교문건.
진보당 사건 당시 공판정에 앉아 있는 조봉암(左).

 

 

 

 

 

 

 

 

포승줄에 묶인 조봉암

김일성 “미국은 우리가
조봉암에게 선거운동을
위해 돈을 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밝혀…

대선 당시 조봉암,
북측에 출마 여부 타진
‘舊소련 외교문서 기록’

김일성, 조봉암 측에
대선 선거자금 건넸다
구체적 액수 기록 없어…

북한 김일성이 남한 대선에 개입했다고 실토한 구(舊)소련 외교문서가 발견됐다고 주간조선이 지난 5월 18일 보도했다.
이는 1968년 9월 당시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자 내각 수상이었던 김일성이 북한을 방문한 드미트리 폴랸스키 소련공산당 정치국원 겸 내각(각료회의) 부의장에게 1956년 남한 대선에 개입했다고 밝힌 문서라는 것이다.
이 문서는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 때 자유당 후보 이승만 대통령에 맞서 출마한 무소속 조봉암 후보가 북측에 조언을 요청했고, 이를 전달받은 북한이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진보당 설립과 조봉암 후보를 지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 북한, 조봉암 측에 자금 지원 및 조언
김일성 발언이 기록된 구소련 외교문서의 해당 기록은 1968년 북한을 찾은 폴랸스키 소련 내각 부의장이 김일성에게 남한의 정세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이에 김일성은 “우리 당(조선노동당)의 남조선에 대한 노선은 혁명세력 준비 겸 사회민주화다. 그러나 우리는 그쪽에 있는 우리 사람들에게 총선에 우리와 관계 있는 정당은 자기 후보자들을 출마시키지만 어떤 높은 직위를 얻도록 노력하지 말라고 했다. 1958년에 우리는 이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이 있었다. 한 정당의 나쁜 영도 탓에 우리는 큰 상실을 받았다. 이 사건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겠다”는 말로 조봉암과 진보당에 관한 비화를 풀어놓았다.
기록의 요지는 북한이 남한에 ‘진보당’이란 소위 ‘합법 정당’의 설립을 지원했고 1956년 남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조봉암 후보 측에 자금을 지원하고 조언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1958년 소위 ‘진보당 사건’으로 진보당이 와해되고, 당수였던 조봉암이 이듬해인 1959년 처형되면서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김일성이 폴랸스키 앞에서 털어놓은 회고다.

■ 조봉암, 북측에 대선 출마 여부 타진
김일성은 “그(조봉암)는 우리에게 해당 임무를 달라고 했다. 우리는 (조선노동당) 정치국에서 이 편지를 토론했고, 다른 동지들을 통하여 그(조봉암)에게 연결체가 될 수 있는 합법 정당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고 폴랸스키에 밝히고 있다.
이 기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조봉암이 북측에 대선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는 대목이다.
기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조봉암은 이승만에 맞서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조봉암)는 우리의 조언을 부탁했다. 우리는 그(조봉암)가 이승만 정권의 장관(농림부 장관)이라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소련 측에 털어놓았다.
김일성은 조봉암 측에 선거자금을 건넸다는 사실도 소련 측에 밝히고 있다.
김일성은 “대선 한두 달 지나서 어쩌면 그 이전에 미국은 우리가 조봉암에게 선거운동을 위해 돈을 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힌다.
다만 김일성은 자금의 구체적 액수는 소련 측에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 “조봉암은 공산주의적 세계관이 있는 사람”
주간조선은 “이번 문서 발견으로 조봉암은 평생을 따라다닌 ‘공산주의자’란 물음표를 사후에도 끝내 뗄 수 없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이 조봉암이란 인물을 소련 측에 설명하면서 “진보당 당수(조봉암)는 국제공산당(코민테른) 시절에 모스크바에서 유학했고 공산주의적 세계관이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또한 조봉암이 조선공산당 창당 등에 핵심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김일성의 발언이 수록된 이번 구소련 문서 발견으로 2011년 대법원이 재심 끝에 내린 ‘무죄’ 판결 역시 재론이 불가피해졌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와 관련 유튜브 채널 황태순TV는 “김일성은 휴전 직후부터 대한민국 내부의 사회 전체 좌경화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며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걸쳐 수십 년 동안 집요하게 추진한 대남 선전선동 전략이 상당히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고명석 기자】

 

고명석 기자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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