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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의 ‘해병혼’

기사승인 2020.04.28  1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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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 해병혼

▲ 배대균  수필가  예·해군소령

지역마다 수호신인 양 받들고 있는 경관이 있다. 진해는 시루봉 자락에 새겨진 ‘해병혼’이라는 글자가 그것이다.
진해에 들어서면 뒷산 정상에 우뚝 선 바위 하나가 들어온다.
높이10m, 둘레 50m의 화산석이며 시루봉산(650m)꼭대기에 서있고 진해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바로 그 바위 아래에 1km 간격을 두고 커다란 글자 3개가 새겨져 있는데 ‘해병혼’이며 한 자 크기가 위 화산석보다 더 크다. 진해 어디서나 바라보인다.

■ 해병대, 그 이름은 더욱 빛난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진해에서 350명 수준의 병력으로 창설되었다.
진해 덕산비행장의 일재 때의 경납고가 막사였으며 무기는 일본군이 쓰던 99식 소총으로 무장했다.
몇 달 간의 훈련이 끝난 바로 그해 여름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되고 이어 제주도 안전병력으로 전 병력이 투입되었다.
이듬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약 500명 수준의 전 병력은 경남 함양, 산청 전투에 이어 진주 전투와 진동·함안 전투를 치렀으며, 같은 해 8월 통영상륙작전을 해병대 단독으로 완수하는 공적을 세웠다.
이어 약 3,000명의 병력은 맥아더 장군의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고 서울을 수복한 후 중앙청에 태극기를 계양했다.
해병대는 6·25전쟁 중 30개의 대전투를 치루니 짧은 역사 속에 그 이름은 더욱 빛난다.
시루봉 주봉은 해병대에 입소하기만 하면 장교, 사병 할 것 없이 하루같이 돌파 훈련을 실시하는 곳이다.

■ 남다른 전우애로 무장된 해병대
어릴 때 무장한 대부대가 훈련 조교의 구령에 맞추어 시루봉을 향하여 구보하고 길거리에 쓰러지는 병사들을 수 없이 바라보았다.
진해 해군 군의관 시절, 시루봉에 오르다가 일사병으로 죽음에 이른 몇 명의 병사들을 진료했으며, 해병대만이 아닌 해군 장병들도 훈련이 끝날 때쯤이면 빠짐없이 시루봉으로 행군했다.
훈련 종료의 상징적 행군이요 장소였다.
시루봉 훈련은 해병은 1시간 안에 정상에 당도해야하고 내리막길은 25분이다. 있을 법 하지 않는 시간대이다.
시종 달음박질이고 그것마저 선착순이며 그 절반은 또다시 시루봉으로 향해야 한다. 시루봉 코스는 보통 사람들에겐 하루 코스이다.
시루봉산 아랫자락은 해병대 사격훈련장이 있다. 사격은 1발 필살의 훈련이며, 규율이 엄하고 성적이 미달하면 시루봉으로 오르게 했다.

지긋지긋한 시루봉,
원한의 시루봉,
하지만 가야만 하는 곳,
해병의 혼이 서린 곳,
즐겨 가는 곳,

군인은 너, 나 할 것 없는 똑같은 대한민국 청년들이다.
별다른 청년이 해병대가 되는 것이 아닌 반복되고 엄격한 훈련이 새로운 청년, 새로운 군인으로 태어나게 한다.
넘쳐흐르는 자존심과 반듯하고 품위 있는 신사가 된다. 그러면서 투사이며 싸웠다하면 승리뿐이다.
해병대의 협동 정신은 유별나다. 명령은 두드러진 협동 정신과 전우애로 가차 없이 완수하고 현명하게 마무리한다. 고대 로마 군단을 능가한다.
해병은 남다른 전우애로 무장되어 있다. 서로 돕고 사랑함이 타군의 추종을 불허하며 이 모든 것은 강한 훈련의 소산물이다.
서로 도와 부상병을 후송하고 남은 병력들은 두 몫, 세 몫 싸운다.

■ 진해의 명물 ‘해병혼’
1964년 어느 날, 시루봉 바위 언저리에 거대한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해병 154·155·156기 동지들은 시루봉에 올라 ‘해병의 혼’ 식각 작업에 돌입했다.
주위의 돌을 주어모아 땅바닥에 시루봉 바위보다 더 큰 글자 세 개를 구축한 후 흰 페인트칠을 하니 ‘해병혼’이었다.
드디어 진해의 명물 ‘해병혼’이 등장되었으며, 올해로 56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해병의 혼은 무엇인가. ‘무적해병’, ‘귀신 잡는 해병’, ‘신화를 낳은 해병’, ‘이 나라의  가장 용맹한 전투 군인’, ‘지구가 멸망해도 영원한 해병’ 그것이다.
시루봉의 ‘해병혼’은 시련을 맞이했다. 해병대는 진해에서 포항으로 떠나고 진해는 산정 숲 속의 흰 색의 세 글자 ‘해병혼’만 외롭게 남았다.
색깔마저 퇴색되고 멀리서 아롱거렸다. 비운의 찰나였다.

■ 해병대여, 영원하라!
몇 해 전의 일이다. 해병대 출신이 진해시장으로 당선되고 해군제독 출신이 국회의원에서 낙선했다.
그는 패배의 감정을 해병대에게 돌리면서 시루봉의 ‘해병혼’ 글자를 지워 없애라고 명령했다.
진해 해병 동지들은 크게 일을 벌였으며 끝내 그 낙선자는 사과하고 ‘해병혼’을 새롭게 도색했다.
또 다른 일이 일어났다. 진해의 환경 관계 인사들이 산정의 ‘해병혼’이 자연을 훼손한다면서 일어섰다. 공무원이 가세했다.
진해 해병동지들은 해병대 기질답게 대항했으며 그 민원들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모이면 모일수록 힘이 솟는 해병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대’, 그야말로 ‘무적해병’에게 그들은 손을 들고 말았다.
2008년, 진해 통제부의 해병 육상경비대장 김필숙 대령은 지역 해병동지들과 함께 도색(사진참고)하니 시루봉의 ‘해병혼’은 해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태어났다.
2020년, 올해의 ‘해병혼’ 세 글자는 희망에 벅차있다.
서병훈 진해전우회장은 뜻 있는 행정가들과 함께 수백 통의 페인트를 마련했으며 새롭게 도색한다. 해병들은 또다시 뭉친다.
시루봉의 ‘해병혼’은 바라본다. 해병들의 뭇 영웅들을 넘어 ‘해병대 초창기의 해병훈련소’와 그 안에 세워진 ‘해병대 발상탑’, 경화동 훈련소의 이승만 대통령의 ‘무적해병탑’과 ‘출전 준비탑’은 영원하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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