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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사령관 해병중장 故 공정식(1925.9.3.~2019.10.25.)

기사승인 2019.11.04  14: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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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적해병’ 신화 남긴 故 공정식 사령관 영결식

제6대 사령관 해병중장 故 공정식(1925.9.3.~2019.10.25.)

■ 학력
1947 해군사관학교 졸업(1기)
1953 미 해병학교 초급참모반 수료
1958 미 해병학교 참모대학 수료
1961 국방대학원 수료

■ 경력
1946 해군소위 임관, 해군사관학교 교관
1947 부산경비부 정장
1948 인천경비부 정장
1951 제1연대 1대대장, 제1연대 부연대장
1953 교육단 부단장
1955 제1여단 3연대장, 제1전투단장
1956 제1사단 참모장
1958 한미해병 연합상륙여단장
1959 보급정비단장
1961 제1여단장
1962 제1사단장
1964 사령부 부사령관/참모장, 제6대 해병대사령관
1966 해병중장 예편

■ 상훈
1950 금성충무무공훈장(’54, ’56)
1951 충무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1951 미 동성무공훈장(’52)
1952 금성을지무공훈장(2회)
1958 국방부장관표창
1962 3등근무공로훈장
1965 월남 캄칸특수훈장(3등), 미 근무공로훈장
1965 태국 2등백상훈장, 자유중국 2등대수운휘훈장
1965 월남 3등훈장
1966 1등근무공로훈장
2016 태극무공훈장

故 공정식 사령관 영정
경례하는 역대 해병대사령관들
제6대 해병대사령관 고 공정식 장군 영결식 유가족

국군 최초의 적 도발 원점 타격 작전인 몽금포작전과 6·25전쟁 당시 ‘무적 해병’의 신화를 만든 도솔산전투에서 활약한 공정식 제6대 해병대사령관이 지난 10월 25일 낮 12시 20분 별세했다(향년 94세).
이승도 해병대사령관이 장의위원장을 맡아 해병대장(葬)으로 치러진 장례식은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했으며, 지난 28일 오전 영결식을 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안산병원 장례식장에는 지난 25일부터 많은 내·외빈 및 해병대전우회원, 현역 장병 등 많은 이들이 조문했으며, 특히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회원 30여 명은 장례식장을 찾아 입관이 끝나고 관포식을 거행했다.
영결식은 유족인 자녀 공용우(해경상사 공동대표)·용대(해경상사 공동대표)·용해(순천향대학교 교수)·옥희(장녀)·덕희(차녀) 씨 등 유가족과 이승도 해병대사령관, 안병태 전 참모총장, 이수용 전 참모총장, 전도봉 전 사령관, 이갑진 전 사령관을 비롯한 역대 해병대사령관, 이인수 박사 내외, 최철원 해병대전략연구소 이사장, 이호연 해병대전우회 총재 등 많은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서 진행된 안장식은 유가족 및 내·외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故 공정식 사령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면서 마쳤다. 【박흥배 보도국장】

故 공정식 사령관 빈소

| 조사 |
■ 영원한 해병대 전설

장의위원장 이승도 해병대사령관

이승도 해병대사령관

해병대 창설부터 6·25전쟁과 베트남전까지 무적해병의 전통을 만드신 사령관님, 우리 해병대의 영원한 영웅이신 故 공정식 사령관님의 영전에 경건히 머리 숙여 삼가 명복을 빕니다.

존경하는 故 공정식 사령관님!

현역과 예비역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모군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큰 가르침을 주신 사령관님께서 이렇게 홀연히 떠나시니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사령관님은 해병대 창설기와 6·25전쟁의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승리의 전통을 남기신 해병대의 역사이자 해병혼의 화신이셨습니다.

1948년, 육군 14연대 반란사건을 진압하고 전투경과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상륙을 수행할 수 있는 해병대 창설”을 주장하면서 해병대 창설의 계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1949년에는 우리 군 최초의 대북 응징작전인 몽금포작전에 참가하시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듬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통영상륙작전과 인천상륙작전 등 해군·해병대 주요 전투에 모두 참전하셨습니다.

특히 도솔산지구 전투에서는 미 해병대도 탈취하지 못했던 난공불락의 요새를 차례로 점령하며 ‘무적해병’의 전통을 만드셨습니다.

이어진 김일성·모택동고지 전투에서도 승리하며 상승불패의 해병대 신화를 남기셨습니다.

서부전선 장단·사천강 전투에서는 중공군의 대규모 파상공세를 격퇴하며 수도 서울 북방을 꿋꿋이 지켜내셨습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초대 3연대장으로 부임하셨을 때에는 의료 취약지역 진료와 양곡일대에 학교를 세우며 애민정신을 몸소 실천하기도 하셨습니다.

사령관 재임 시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베트남전 참전 가능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대는 24시간, 연대는 48시간, 사단은 72시간 만에 출동할 수 있다”라고 답변하시면서 상시 출전태세를 갖춘 국가전략기동부대 해병대의 면모를 각인시켜 해병대가 전투부대 중 가장 먼저 베트남에 파병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령관님께서는 국문을 떠나신 후에도 국회의원과 부산무역진흥공사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국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셨으며, 해병대에 장학금을 기탁하시고 해병대전략연구소 이사장으로 모군 발전을 위한 대안을 제시해 주시면서 해병대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특히 올해는 해병대 창설 70주년이 되는 해로써 국가가 신뢰하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해병대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령관님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수많은 전투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기신 사령관님의 해병혼과 해병대정신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 해병대는 사령관님께서 남기신 크나큰 뜻을 이어서 새로운 미래를 향해 중단 없이 나가겠습니다.

故 공정식 사령관님!

사령관님은 부하들이 걸으면서 함께 걸으셨고, 부하들이 땅바닥에서 잠들면 함께 주무시며 부대원들과 항상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부하들에게는 공감과 소통의 지휘관으로, 가족에게는 자상한 가장으로, 사령관님을 알던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습니다.

무적해병의 살아있는 전설이셨던 사령관님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그 정신과 기백은 남아 영원한 해병으로 해병대의 영원한 전설이 되셨습니다.

대한민국 해병대 전 장병과 함께 사령관님의 명복을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부디 이생에서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으시고, 평안히 영면하소서.

2019년 10월 28일

해병대사령관

해병중장 이승도

 

| 추도사 |
■ 영원한 안식 누리길…

이갑진 해병대전략연구소장

“약관 스물에 조국의 부름을 받은 내가 하염없는 세월에 만감이 교차 하면서 지난 70년을 돌아본다. 해병대는 태어난 지 불과 첫돌을 넘자마자 전쟁에 참전하며 잔뼈가 굵었다. 창설 16년, 지학(志學)의 나이에 우리 오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파병 전투부대인 청룡여단을 월남전에 보냈다.”

금년 3월 해병대 창군 70주년을 맞는 사령관님의 회고사에 쓰신 이 생에 마지막 글 중의 일부입니다. 아마도 사령관님의 현역생애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신 자신의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한평생을 “해병대”라는 이름 세자를 위해 영원한 해병 바다의 사나이로 쉼 없이 달려오셨던 사령관님,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해병대전략연구소장 이사장님을 흔쾌히 맡으시어 10여 년간 저희를 이끌어 주시다가 퇴임 하신 것이 작년 1월인데 이렇게도 빨리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세대의 차이를 뛰어 넘어, 때로는 업무의 파트너처럼, 때로는 자식처럼 후배들을 대하시며 가르치시던 사령관님의 따뜻한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연수가 강건하면 80이라고 했는데, 90의 연수에도 사자후를 토하며 후배들을 격려하셨고, 그저 계심으로 우리가 기댈 수 있었던 우리들의 큰 바위 얼굴이셨습니다.

특별히 사령관님과 함께하며 듣고 배웠던 해병대 역사의 살아있는 증언들은 저에게는 축복이요 선물이었습니다.

“이갑진 사령관” 하시며 불러 주시던 그 온화하시고 자상한 음성이 지금도 들려오는 것 같아, 가슴이 메어 옵니다.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평생을 사랑하셨던 사모님과 자녀들을 뒤로 하시고, 이생에서의 어쩔 수 없는 육신의 이별을 하시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공정식 사령관님, 추위도, 더위도 없고, 육신의 병마와 질고도 없으며, 해병대의 걱정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먼저 간 전우들과 아름다운 해후를 반기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2019년 10월 28일

제23대 해병대사령관

이갑진 올립니다.

 

<哀悼의 글>

제6대 해병대 사령관 공정식 님 영전에 바치는 글

성광웅(해병학교 35기) 문학평론가

오늘 청천벽력같은 소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라가 어지럽고 뒤 승승한 이 시기에 고인이 가시는 날 하늘도 슬퍼서 잠시 눈물을 흘렸나 봅니다. 고인을 귀히 여기는 우리 모두는 마음에 회한과 감회에 젖어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인생은 생로병사 生老病死의 한 순환과정을 겪는다고는 해도 인생무상, 허무함이 한순간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평소 존경하는 공정식 사령관님!.

그동안 함께 지냈던 일들이 주마둥처럼 밀려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해병대 사관 35기 임관식 때 진해에 오셔서 일일이 축하해 주시고, 그로부터 수십여 년 동안 깊은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2018년 01월 해병대전략연구소 이사장직을 마지막으로 회의를 주관하시고 계실 때입니다. 늠름한 모습에 항상 정정하시고 만연에 미소와 온화한 얼굴로 대할 때마다 그 포근함에 늘 정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때 마지막 이임 인사말을 마치시고 떠나실 때, 우리는 그동안의 헌신봉사와 노고에 대하여 깊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힘찬 박수로 대신했습니다.

그 이후 이미경 과장을 통해서 종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시어 아무도 안 만나시고 오르지 집안에 기거하고 계신다고 해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공정식 사령관님이 누구입니까?

해병대 창설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하신 분이 십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육군 반란사건 시 통영함 정장 대위로 진압 작전에 참가하셨을 때 육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바다 멀리에서 바라보며 가슴을 치며 아쉬워 한탄하셨습니다. 그때는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해 진압할 수 있는 무력수단이 없었습니다. 반란 사건을 평정한 이후에 전투상황 보고서를 제출하셨습니다.

해병대 창설의 필요성을 적극 공식 제의해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은 신현준 대령에게 지시해 1949년 4월 15일 380명의 병력으로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해병대를 창설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인이 인정하는 막강한 해병대를 탄생시킨 일화입니다.

해병대는 우리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현준 초대 사령관, 김성은 사령관(국방부 장관), 공정식 사령관은 해병대 창설의 주역이시며 기반을 튼튼히 다지신 분들이 십니다.

6.25 전쟁을 통해서 이룩한 성공담은 대단하십니다.

김성은 부대는 북한군이 전라도, 광주를 휩쓸고 돌아서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와 최후의 방어선 부산을 향해 돌파하려는 위급한 시기에 북한군을 맞은 통영 상륙작전은 적의 예봉을 꺾은 청사에 빛나는 전과를 이룩했습니다. ‘귀신 잡는 해병’의 별칭도 ‘뉴욕 해럴드’ 트리븐 마거리트 허긴스 종군기자에 의해서 얻게 되었지요.

그 이후 공정식 사령관은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한 몽금포기습작전, 가리산, 화천지구, 도솔산 전투에서 위대한 전공을 이룩하셨습니다.

난공불락의 도솔산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의 휘호를 받기도 하셨습니다. 뒤이어 수도 서울 초입 서부전선의 적 위협을 막아 달라는 대통령의 긴급명령에 의해 용맹한 해병대는 중동부 전선에서 서부전선으로 전쟁터를 신속히 이동합니다. 중공군은 파죽지세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와 서울은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이었습니다.

적의 주공은 문산 축선(서울 50km)을 따라서 주로 서울 방향으로 공격해 들어왔지요, 특히 사천강-장단지구 전투는 휴전을 목전에 두고 피아간에 격렬한 사생결단을 치른 대규모 전투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5쳔 년 유사 이래 첫 해외 전투부대인 청룡부대의 베트남 파병은 역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업적이었습니다. 청룡이라는 위엄있는 부대 명칭도 부여해주셨습니다. 한국은 베트남전 파병 기회로 미국 달러화획득과 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선진기술을 습득하고 뒤이어 중동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내외에서 승승장구해 오늘날 한국 경제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일조하셨다고 자부합니다.

고인은 전투 시 혁혁한 전공을 세워 태극무공훈장을 비롯한 미국 금성, 동성훈장 등 다수의 훈장을 받은 전쟁의 영웅이십니다.

해병대 사령관 전역 후에도 국회의원을 비롯한 서해 구락부 총재, 부산무역공사 회장 등 사회에서 주요직책을 맡으시고, 해병대발전을 위해서 해병대전략연구소 이사장을 끝으로 오르지 한길 해병대를 사랑하시며 선후배와의 끈끈한 정과 인연을 맺으셨습니다. 평생 인생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오르지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해병대 특유의 무적해병 정신이 포괄하는 애국자이시며,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이라는 모토 아래 해병대의 살아있는 전설이시며, 호국 충성, 명예와 전통의 금자탑을 쌓으셨습니다.

 

인생의 숙명이란 정해진 길로 가시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인생이 가는 길이라 하는데......,

이 세상에 그립고 보고프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자, 손녀, 가족, 친지를 뒤로 한 채 홀로 홀연히 떠나가시는 그 심정이야 오죽하시겠습니까.

평생 그 늠름하고 인자하신 모습이 떠오릅니다. 인생무상人生無常,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는 다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제 세상사 부귀영화 다 저버리시고 천국에 가셔서 나라 걱정 없이 편안히 영생불멸하시기 바라옵니다.

공정식 사령관님,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9년 10월 28일 공정식 사령관님을 회상하며

문학평론가 성광웅 올림

 

박흥배 기자 phb7439@hanmail.net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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