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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남긴 해병대’ 월남전을 재조명하다

기사승인 2019.06.13  14: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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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수정(해병대사관 12, 예·해병소장) 장군

차수정 장군은 소령 계급으로 1966년 8월 캄란만에 상륙해 2대대 작전장교로 부임했다. 북극성작전, 백경2호작전, 용안작전 등 야전에서 작전을 직접 체험했고, 1966년 11월 제3대대 부대대장으로 부임했다. 대대장의 작전 지휘를 보좌하며 특히 대민지원 업무에 치중하고 있던 중 1967년 1월 투망작전과 1967년 2월 짜빈동작전을 직접 체험했다.

전투에서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 없다
실패한 작전이 교훈이 되어 더 큰 전승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안녕하십니까,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신화를 남긴 해병’ 전설을 창조한 해병대의 월남전을 재조명하기 위해 차수정(해병대사관 12) 예·해병소장님을 초대석으로 모셨습니다. 월남전에 대한 연구를 많이하셨고, 물론 직접 참전도 하셨는데 당시 청룡부대의 활약은 어떠했습니까?

대한민국 해병대 제2여단 청룡부대는 1965년 10월 전투부대 최초로 월남 전쟁에 파견되어 6년 5개월간 베트콩 및 월맹군과 수많은 작전을 실시했습니다.
월남전 작전 통계에 의하면 청룡부대는 대대급 이상 작전 180회, 분대에서 중대급 소부대 작전은 무려 151,347회나 실시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같이 수많은 작전을 실시하면서 청룡부대는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실패한 소위 일승일패(一勝一敗) 작전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 월남전에서 청룡부대가 실시했던 대표적인 작전으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지난 1985년 해군본부 해병참모부가 발행한 ‘해병약사’에 수록된 월남전 전투약사에서 청룡부대가 실시한 15만여 회의 대소작전 중 주로 크게 승리한 작전이나 교훈적인 작전으로 평가되는 10대 작전을 수록했습니다.
이는 ① 청룡1호작전, ② 해풍작전, ③ 짜빈동작전, ④ 용머리2호작전, ⑤ 테로이매복작전, ⑥ 승룡7-21호작전, ⑦ 승룡12-1호작전, ⑧ 승룡15-1호작전, ⑨ 황룡2호작전, ⑩ 황룡10-22호작전 등입니다.
청룡부대의 10대 작전은 곧 10대 전승 작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전의 특징은 ① 아군의 피해보다 상대적으로 전과를 크게 올린 전투, ② 고노이섬과 베리아반도 상륙작전 등 해병대 고유의 임무를 실시한 전투, ③ 다량의 무기와 식량을 노획한 작전, ④ 넷째, 故 이인호 소령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부하들의 생명을 구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병사들의 사기를 고양시킨 교훈적인 작전, ⑤ 기습작전의 중요성과 뛰어난 효과를 시사한 작전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 15만여 회의 소부대 작전 중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 작전도 포함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많은 소부대 작전 중 전투상황을 전사(戰史) 또는 기타 문헌상에 기록으로 남긴 것은 수십 건에 불과합니다.
이 기록에 남긴 수십 건의 전투상황도 대부분 이겼다, 잘 싸웠다 하는 것이고 실패한 전사를 기록한 것은 일부 공간사(公刊史)에 극히 간략하게 수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 많은 실패작전 중 필자가 체험한 가장 큰 작전은 일시에 32명이 전사하고 31명이 부상한 투망작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투에서 한 번쯤 실패했다고 해서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실패한 작전이 교훈이 되어 더 큰 전승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례로 1967년 1월 대패작전인 투망작전과 2월 대승작전인 짜빈동작전은 불과 1개월여의 간격을 두고 진행됐습니다.
결국 둘 다 청룡부대가 실시한 15만여 회의 소부대 작전 중의 일승일패 작전이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일 뿐입니다.


- 투망작전 당시 우리 해병대는 짜빈박 마을 인근에서 베트콩의 기습 공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월남전은 전후방이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베트콩은 주민들 속에 숨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대민지원을 해줬다고 해서 모두 우리 편도 아닙니다. 겉으로는 우호적인 것 같지만 그들의 진심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투망작전은 실패는 과거에 보급물자를 도수 운반하기 위해 몇 차례 도보 왕래한 경험이 있어 안전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베트콩은 아군이 종종 도보 왕래하는 것을 알고 유선까지 가설하는 등 매복 작전을 준비해 왔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항공표시 깃발을 단 무전기 안테나는 대대지휘부의 위치를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어 베트콩 매복대는 대대지휘부를 집중 공격함으로써 장교 3명을 포함 큰 피해를 당했습니다.
따라서 숲이 우거진 계곡지역을 이동할 때는 무전기 안테나를 최대한 위장하고 분산하여 이동했어야 했고, 경계분대나 본대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첨병처럼 경계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도 어쩌면 한 달여 후에 벌어진 짜빈동전투의 대승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실패한 작전이라 하여 숨기려하기보다 도리어 그 진실을 들어내어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 끝으로 지난 월남전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교훈을 말씀해주십시오.

투망작전은 비록 아군의 피해가 컸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용전분투하다가 전사한 장병이나 살아남은 장병 모두가 해병대 명예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위기를 극복한 영웅들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 해병대가 월남전에서 ‘신화를 남긴 해병’의 역사를 남길 수 있었던 건 해병대만의 특유한 정신 상태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해병들은 선배 해병이 물려준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전우 상호간 뜨거운 전우애로 단결했고, 해병대에게 결코 후퇴란 없다는 필승정신으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용감하게 싸우려면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우리 해병들은 그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모든 후배들이 가져야 하고, 또 영원히 이어져야 할 해병대 전통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명석 기자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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