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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식 당시 대대장에게 듣는 ‘무적해병’의 전설, 도솔산작전

기사승인 2019.06.13  13: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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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산작전 전승기념일(6.19)

도솔산작전 당시 1대대장이었던 공정식 제6대 해병대사령관

■ 도솔산지구를 탈환하라!
1951년 6월 3일, 해병 제1연대장 김대식(제3대 해병대사령관 역임) 대령에게 도솔산지구를 탈환하라는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도솔산지구는 중동부전선의 심장이었다. 즉 원산을 꼭짓점으로 하고 양양-양구-철원 선을 밑변으로 하는 중동부전선의 한 가운데인 ‘삼각산악지구’에 위치한 전략요충지였다.
5월 하순경, 미 해병 1사단이 도솔산 지구를 공격했다. 하지만 도솔산 지구는 난공의 요새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뒤 미 해병 1사단은 손을 들고 말았다.
세계 최강의 미 해병대조차 혀를 내두르고 물러난 도솔산을 한국 해병대에게 탈환하라고 하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해병 1연대에게 맡겨진 임무는 ‘캔자스 라인(임진강-양양) 너머 해안부지 우측의 봉우리인 도솔산 주봉을 포함해 24개의 봉우리를 차례로 점령하는 것이었다.
공정식의 1대대는 공격 목표물이 가장 많은 좌 일선의 공격 라인을 담당하게 됐다. 최종 목표인 도솔산 주봉에 도착하려면 10여 개의 봉우리를 점령해야 했다.

■ “전술을 바꿔야 합니다!”
6월 4일, 도솔산 탈환작전이 시작됐다. 작전 초기 해병 1연대는 3개 대대를 세 방면으로 나눠 대대 단위로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성과가 부진했다. 미 해병 5연대가 그랬던 것처럼 고지 하나를 점령하는데 너무나 많은 피해가 따랐다.
6월 11일, 연대 지휘관 회의가 소집됐다. 연대장을 비롯하여 연대 참모와 대대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작전을 숙의했다. 공정식 대대장이 입을 열었다.
“전술을 바꿔야 합니다. 연대가 한꺼번에 야간 기습공격을 해야 합니다.”
공 대대장의 주장에 연대장과 참모들도 동의했다. 한국 해병대가 연대 규모의 야간전투로 작전을 바꿨다는 소식을 듣고 토마스(G. Thomas) 미 해병 1사단장이 공 대대장을 찾아왔다. 작전을 구상한 공 대대장에게 그 내용을 직접 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지도를 펼쳐놓고 작전의 개요를 설명하자 토마스 장군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공 대대장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미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 해병대원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적극적인 함포와 항공지원, 그리고 야포지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공 대대장의 건의를 들은 토마스 장군은 배석한 작전참모에게 “공 대대장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했다.

■ 죽음의 고비 넘긴 공정식 대대장
다음 날, 도솔산지구에 어둠이 깔리자 약속대로 미군이 포격을 퍼부었다. 사기가 오른 해병 1연대 장병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고지로 돌진했다.
그토록 완강했던 북한군이 일제히 도주하기 시작했다. 모든 화력과 병력을 집중한 전술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후 한국 해병대는 파죽지세로 24개의 목표를 점령해나갔다. 이때 공 대대장은 북한군의 대전차지뢰를 밟고 죽음에 문턱이 이를 뻔 했으나 천행으로 살아남았다.
연대 의무실로 옮겨진 공 대대장은 즉시 파편 제거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날 때쯤 제2전령이 들어와 후송차가 왔다고 보고했다.
“누가 후송 간다고 했나? 난 여기 있을 테니 차는 돌려보내도록.”
공 대대장은 후송을 거부했다. 도솔산 주봉이 눈앞에 있는데 대대장이 전선을 비울 수 없었던 것이다.
공 대대장은 하룻밤을 쉬고 난 후 다시 전선으로 달려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대대 장병들은 사기가 충천했다.

■ 무적해병 신화를 만들다
6월 19일, 해병 1연대는 드디어 24개의 목표 중 마지막 목표인 도솔산 주봉까지 탈환하고 20일에 작전을 종결했다.
‘해병대 5대 대첩’ 중의 하나로 꼽히는 도솔산전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도솔산전투는 동해안과 중동부전선의 북부를 탈환하는 계기가 된 전투였다. 즉 한반도 중동부전선을 38도선 북쪽으로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투였던 것이다.
도솔산전투 24개의 목표 중 한국 해병대가 탈환한 목표는 22개였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 해병대가 점령한 목표가 불과 2개였다는 사실과 비교해 봤을 때 실로 어마어마한 전과였다.
특히 공 대대장이 지휘한 1대대는 적 사살 1,125명, 포로 23명으로 3개 대대 중 가장 큰 전과를 올렸다.
도솔산전투를 보고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얼마나 기뻤던지 해병 1연대에게 ‘무적해병(無敵海兵)’이라는 휘호를 내렸다. 바로 이때부터 ‘무적해병’은 ‘귀신 잡는 해병’과 함께 해병대를 상징하는 해병대의 별칭이 되었다.
“도솔산 24개 목표 중 22개 목표를 우리 한국 해병대가 점령하고, 나머지 2개 목표는 미국 해병대가 점령을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미국 해병 1사단이 점령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도솔산을 한국 해병대가 점령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너무나 감격해가지고 한국 해병대를 보고 무적해병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직접 ‘무적해병’이라고 휘호를 써가지고 우리 한국 해병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자료 출처 : 무적해병의 전설 공정식】

 

○ 도솔산지구의 혈전

해안(海晏) 정채호


敵側豪言不落城  적측호언불락성  적군 측에서 불락의 성이라며 큰소리를 칠만했던
峨峨兜率孔難征  아아도솔공난정  높고 험한 도솔산(△1148) 공략하기 어려웠던 작전지역
臨防被士莫强隊  임방피사막강대  방어에 임했던 적군은 막강한 부대였고
攻者海兵尤猛勍  공자해병우맹경  탈환에 나선 해병들은 더욱 용맹스럽고 강했다
降雨頻繁流月署  강우빈번유월서  비가 자주 내린 6월의 더위
濃深雲霧遮微明  농심운무차미명  짙은 운무는 시야를 흐리게 했다
敵徒配置壁岩壘  적도배치벽암루  적병들은 암벽진지에 배치되었고
吾取目標咸險<가파를 쟁>  오취목표함험쟁  아군이 취해야할 공격목표(24)는 모두가 험준했다
防輩隨時抛手彈  방배수시포수탄  적병들은 수시로 수류탄을 집어던져
伏匍欲進我兵繃  복포욕진아병붕  포복을 해서 전진하려는 아군을 묶었다
砲丸炸裂轟音震  포환작렬굉음진  포탄을 터져 폭음이 진동을 했고
彈雨怒號如鬼鳴  탄우노호여귀명  빗발친 총탄은 귀신의 울음소리처럼 울부짖었다
必死攻防十七日  필사공방십칠일  17일간에 걸친 필사적인 공방전
沾坤鮮血若花禎  첨곤선혈약화정  지면을 적신 선혈은 붉은 꽃과도 같았다
每陵每谷腐屍體  매능매곡부시체  능선마다 골짜기마다 썩은 시체
山上山中皆化塋  산상산중개화영  산위와 산중이 다 무덤으로 화하였다
奏效夜<뭉칠 단>狙主陣  주효야단저주진  주효를 했던 것은 적 주진지를 노린 야간공격
瞳前遂占最終坑  동전수점최종갱  먼동이 트기전 마침내 최후의 적 참호를 점령했다
口傳相抱大聲哭  구전상포대성곡  돌격한 병사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萬歲連呼突擊兵  만세연호돌격병  만세를 연호했다는 이야기가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以劍某兵岩木面  이검모병암목면  어떤 병사는 대검으로 큰 바위와 나무에
母軍萬歲字鐫枰  모군만세자전평  급히 ‘해병대만세’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史評不吝其功績  사평불인기공적  그 전투공적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인색치가 않으며
無敵海兵傳統成  무적해병전통성  무적해병의 전통을 세웠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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