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해병대 전차부대의 역사적 시초

기사승인 2019.05.29  10:10:26

공유
default_news_ad2

- ‘소년전차병 1기’ 오산근, 표무운, 김준철

해병대 소년전차병 1기생들. <좌측부터> 오산근, 표무운, 김준철

■ 영어교육 받은 학생 모집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어린 나이도 불구하고 6·25전쟁에 참전한 해병대 소년전차병 1기 오산근 본지 고문, 표무운 노병, 김준철 노병을 만나 소년전차병 1기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2년이 지난 1952년 8월 해병소년전차병 모집을 보고 전국 각지에서 진해로 모였다.
전쟁 중에 징병이 아닌 자원입대하여 만들어진 해병대의 소년전차병 제도는 제1기만 배출하고 중단되었다.
그 당시 소년전차병에 지원할 수 있는 나이는 17세~19세로 작문, 기하, 대수, 체육, 공민 5가지 시험을 봐서 합격한 사람을 뽑았다.
이유는 사용하는 게 미국 장비이다 보니 영어를 조금이나마 읽어야 하는데, 19살 넘은 어른들은 영어가 부족하기에 영어 교육이 잘된 편이었던 어린 10대를 모집해 최신 장비를 다룰 수 있게 했던 것이었다.
기초신병 교육을 마치면 전차에 대한 모든 학과나 기술은 일본 오키나와 미 해병대 기지에서 전차 교육을 한 뒤 이들을 교관 요원으로 양성하는 게 모집 조건이었다.

■ 수송·통신 병과로 전장 투입
이렇게 전국에서 모인 해병대 소년전차병 98명의 지원자 중 나이가 너무 어려서 10명은 집으로 복귀시키고, 88명의 소년전차병 1기생들의 입대식이 1952년 8월 24일 진해여고 강당에서 해간 12기 입교식과 함께 열렸다.
이때 소년전차병 1기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는데, 보급되는 군복도 미군 카키 작업복과 군화 등 미군이 사용하는 군수품을 지급 받았다.
또 계급도 일등해병(상병)으로 입대해서 전역도 일등해병(상병)으로 했다.
소년전차병은 1구대는 수송, 2구대는 통신 병과로 구성되어 전차는 한 대도 없이 7개월간의 신병 교육훈련을 받았다.
3개월은 병 기본교육을 받았고, 4개월간은 병과 별로 전문교육을 수료하고, 전선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1953년 3월 각각 예하 부대로 모두 배치되었다.
수송병과는 후방지역에서 근무하고, 통신병과 50여 명이 파주 제1전투단에 배치되어 장단·사천강지구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으로 투입되어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휴전협정으로 종전이 되는 1953년 7월 27일까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선배들을 도와 싸웠다.
휴전되고 부대별로 복귀하고 나니 다행히 소년전차병 1기생들은 전사한 동기들이 없었다.

■ 전차대대 창설로 이어져…
해병대는 6·25전쟁 당시인 1951년 8월 25일 미군의 지원을 받아 한국군 최초로 전차중대를 창설했다.
그해 12월 M4A3 전차 5대를 1차로 수령하고, 이후 20대의 전차로 편성된 중대 규모로, 미 제1해병사단 전차대대에서 위탁 교육을 마친 해병대 전차중대 창설요원들은 1952년 6월 장단지구 전투에 참전해 한 대의 전차 손실도 없이 공을 세우며 종전을 맞이했다.
해병대는 전쟁 중 전차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1954년 2월 전차대대를 창설하게 된다.
해병대 소년전차병 1기생 70여 명이 전차대대로 편입되어 처음으로 전차를 접하게 되면서 교육을 받고 해병대 전차대대에서 주축이 되어 전차병으로 파주 금촌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전차대대에는 미국에서 도입된 M4A3E8 전차(셔먼)를 가지고 운용했다.
해병소년전차병 1기생 중에는 장교 시험을 보고 장교가 된 동기도 있으며, 대부분의 동기는 전역하고 계속해서 학업을 한다든지, 가정이 어려운 동기들은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 당당한 해병대 한편의 역사
1956년 8월 23일 동기들 38명이 안양에서 처음으로 모임을 하고 나서 바쁘게 살다 보니 지금까지 모임을 갖지 못하고 연락이 되는 몇 명이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6명의 동기가 모이기로 하였으나 3명이 개인 사정과 건강 문제로 참여하지 못하고 오산근 본지 고문, 표무운, 김준철 노병 3명만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살아온 지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이제 나이도 8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면서 “동기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아있으면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혹시 무적해병신문을 보고 연락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소년전차병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2002년이 돼서야 알게 되고, 나이가 어렸다는 이유로 참전용사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다행히 2002년부터 참전용사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 현재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어 있다.
6·25전쟁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나 공적들이 상세히 기록돼 전해지고 있는데, 해병대 소년전차병 1기생들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의 절체절명 위기 속에서 당당하게 조국을 위해 싸운 당당한 해병대 역사속 인물들이다. 【박흥배 보도국장】
※ 해병대 소년전차병 1기생 소식을 아시는 분은 본사로 연락 바랍니다. ☎ 1855-0415

전차대대에서 도입해 운용했던 셔먼전차를 살펴보는 세 노병들.
해병대 소년전차병 1기생 수료 기념식. (진해 경화2병사, 1952.11.28.)

 

박흥배 기자 phb7439@hanmail.net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