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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정신으로 40년 한길 걸어온 법조인

기사승인 2019.02.14  13: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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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국현 해병 269기 전국총동기회 회장·공증인가 법무법인 세인 법무국장(재판담당)

박국현 해병 269기 전국총동기회 회장

■ 해병 269기 전국총동기회장을 맡고 있는 박국현 전우를 만났다
‘공증인가 법무법인 세인(世人)’의 법무국장 직함의 명함을 받고 “일반 변호사 사무실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질문하자 “공증인가 법무법인은 검찰에서 하는 일을 공무로 대행하기 때문에 법무부 피감사 대상으로 현재 수원지방검찰청 소속으로 지정을 받은 공증인가 사무실에 법무국장 직책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법무국장’의 직함에 대해 민사, 형사, 가사, 행정, 노동, 인권 등 제반 송무(재판) 업무를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40년간 한길로 걸어온 법조인이다.
박국현 전우는 충청북도 감곡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후 1974년 4월 1월 해병대를 지원해 해병 269기가 되었다.
병환 중인 홀어머니를 모신 두 형제의 장남으로 결혼해서 어머니를 모셔야겠다는 생각에 해병대를 지원한 것이다.
그때의 대한민국은 월남전에서 철수하고 동서 냉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지만 산업화의 물결이 덜 미친 충청도 내륙의 감곡은 평화롭고 한적한 서울 인근 지역이었다.
때문에 한창 피가 끓는 청년 박국현은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깜깜이’였다.
해병대가 바다와 육지의 사나이라는 것은 모른 채 타군보다는 복무기한이 제일 빠르다는 것만 알고는 해병대를 지원한 것이다.
“저는 진해훈련소에 가서 난생 처음으로 바다 구경을 했습니다”고 그때를 말했다.

■ 무장공비토벌작전 참가로 모친 사망 한 달 후 통보 받은 장남 박국현
신병교육을 수료하자 포항사단 3연대 1대대 2중대로 배속 받아 근무하다가 만기제대를 했다.
군 복무 중 1975년 7월 공비토벌작전 참가 도중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대원 손태환, 손정원 4촌간 부사관과 한상기 동기가 전사하는 등 밤과 낮을 거꾸로 뛰어야 하는 작전으로 인해 모친 사망 관보가 뒤늦게 도착하여 한 달 후에야 어머니 묘를 찾아야 했던 장남의 불효를 범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토박이와 선거 대결 벌인 好男 해병대전우 박국현
1976년 제대 후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는 공부하랴, 먹고 살랴 하느라 공부에 전념 못했습니다. 더욱이 법대를 안 나와서 독학으로 법을 공부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고 당시를 회상한 그는 서울과 수원에서 법조사회에 몸 담고 있는데다 만학(경희대 행정학과 졸, 옥스퍼드대 2년 수료)을 하면서 지역사회의 봉사와 동문들과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과정에서 지역민들의 성화로 시도의원에 출마를 권유받았다.
결과는 두 번 출마해서 80~100차로 낙선하는 간발의 차선자로 끝나야 했다.
“타지 사람이 수원에 들어와서 토박이와 대결에서 그 정도라면 잘했다는 위안을 갖는다”고 미소를 지었다.
“인성을 중시하라”는 가훈으로 자녀를 키웠다고 말하는 충청도 양반의 냄새가 풍기는 해병대전우를 만난 것이 즐거웠다. 【신동설 발행인】

현충원에서 먼저 떠난 전우를 참배하며 경례하고
현충원에서 먼저 떠난 전우에게 술 한 잔을 올리고 있는 박국현 전우

■ Story ‘편하게 보였던 이발병 되려다 3일 동안 뻗었다’
충청도 시골 촌놈이 처음 바다 구경을 했지만 이발병이 있는 것도 그때야 알았습니다.
신병훈련소에 들어가자 처음 만난 해병이 이발병이었어요.
“너희들은 모두 내 손에 달렸다”며 바리캉으로 머리카락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근엄함(?)이 어찌나 부러운 줄 몰랐어요.
‘나도 이발병이 되어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맘먹고 있던 차에 포항 3연대 1대대 2중대로 배속되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이발할 줄 아는 사람 손들어!” 하길래 나도 모르게 번쩍 손을 들었더니 “너는 오늘부터 중대 이발병이다”고 명하는 겁니다.
즉시 제주도로 QRF(Quik Reaction Force; 대대급 신속대응부대) 훈련 차 출동했습니다.
제주에 상륙하자마자 모슬포까지 완전무장 행군하여 갔습니다.
도착하자 가방을 주면서 “너는 경비대 이발소에 가 있어라”고 하여 편안하게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일주일 후 “경비대장(소령)님 이발하라”고 하여 그때서야 가방을 열어보니 가운이 있는데 그건 알았기에 두르고 폼은 잡았지만, 생전 처음 본 가위와 바리캉을 보는 순간 어떻게 잡는지 방법도 몰랐습니다.
경비대장은 졸고 있었는데 한참 지나니까 눈을 뜨곤 “거울 가져와 봐라”며 보는 순간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더군요.
생전 처음 가위를 잡았는데 머리가 쥐 뜯은 것처럼 된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즉시 방위병으로 근무하는 진짜 이발병이 왔지만 수습이 안 되니까 빡빡이로 해결하더군요.
본대에 와서 ‘빳다’를 얼마나 맞았는지 3일간 뻗었습니다.
나중에 경비대장이 불러서 “너 이발도 못하는 놈이 왜 왔냐” 묻기에 “충청도 촌놈이 끗발도 없고 이발병이 편하게 보여서 손 들은 겁니다. 그런데 가방을 받았지만 한 번도 열어볼 시간이 없어 연습도 못한 채 여기에 왔습니다” 하니까 기가 막힌 지 웃으면서 “내일부터 진짜 이발병하고 있어라”고 해서 거기서 8개월간 있으면서 배웠습니다.
제주도 모슬포에서 훈련이 끝나고 포항 3연대 1대대 2중대로 원대 복귀하니 해병 275기 진짜 이발병 후배가 들어와 있는 겁니다.
이후 군기만 잡으면서 만기제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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