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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시청 앞에 해병대가 왜 그렇게 많이 모였나?

기사승인 2019.01.29  10: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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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해병대전우 총궐기 국민대회

전국 해병대전우 총궐기 국민대회가 서울시청 앞에서 1만여 명이 웅집한 가운데 거행됐다.

지난 1월 12일 토요일 13시부터 서울시청 앞 대한문에서 전국에서 집합한 5천여 명의 해병대전우들과 육해공군 사관동문회 및 타 군인단체 회원들과 시민들 약 5천여 명이 합세하여 1만여 명이 모인 큰 행사가 거행됐다.
이 행사의 시발점은 지난해 12월 7일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에서 “해병대 사령부가 NLL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남북군사합의서를 반대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부터였다.
이 기사가 발전하여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이 공식적으로 직접 의사를 밝힌 것으로 오도되기 시작했다.
남북한 군사합의서 내용은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모든 기종들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였는데, NNL 내에서의 경우 남북한 대치 거리가 불과 1.5~5km밖에 안 되는 지근거리여서 항공정찰 활동을 통해 적의 침투동향을 사전 포착할 수 없기에 “김정은이 목에 가시처럼 생각하는 해병대는 반신불수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며 김정은의 의도대로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해병대전우전국총연맹 최병국 총재와 임원들은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후 국방안전을 다짐하는 총궐기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같은 취지를 담은 행사 광고가 일간지에 나가면서 전국적인 해병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문사로 전화를 해와 “언제 모이는가?”, “신문사는 나오는가?”, “정치적 행사가 아닌가?” 등 문의가 쇄도하면서 해병대전우들의 큰 관심사로 부각됐다.
그러나 이 행사가 “정치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서해를 지키는 우리의 모군들을 걱정한 순수한 해병대만의 행사냐?” 하는 것으로 본사는 편집회의를 가진 후 “만약 정치적 색채를 가진 행사라면 생각을 달리하는 전우들 간의 분열이 생길 것이며 순수한 해병대의 행사라면 해병대의 단결력을 국민들과 정치권에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취재는 하되 순수한 해병대만의 이야기를 보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기자는 해병대전우총연맹이 자체 행사비와 홍보비등 열악한 자금력으로 인해 부득이 국본(국민행동본부) 행사에 양해를 얻어 행사를 하는 관계로 약간의 정치적 성향이 있더라도 그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국본 측은 정치인들의 연설을 모두 생략하고 국민의례 순서부터 모든 행사를 해병대가 주관하는 것으로 행사의 본질이 탈색되지 않도록 배려해줬다.
최병국 총재의 인사로 시작된 행사는 5명의 노병들이 단상에 올라 삭발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15시부터 청와대로 향한 행진이 시작됐다.
오랜만에 열리는 해병대만의 행사에서 ‘과연 얼마나 모였는가?’, ‘전국적인 행사였는가?’가 매우 궁금했다.
보폭으로 실측한 결과 어림잡아도 5천 명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기자가 신문을 창간한지 8년 만에 이렇게 많이 모인 해병대의 모습은 처음 목격했다.
그 중에는 충청도, 경상도, 부산, 대구 등지에서 온 전우들과 군중 속에서 모 현직 언론단체장 부부가 기자를 알아보며 반가워하는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시골에서 농사짓는 동기생의 사복 차림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또 연합뉴스 등 취재기자들의 활기찬 취재 전쟁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이 행사를 얼마나 보도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
아무튼 그날의 행사는 평화적인 집회로 잘 치러진 행사였다.
주최 측이 결의문을 청와대에 전달한 후 한 달 이내에 답을 주겠다는 호의적인 응대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해병대의 집합 숫자가 많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된다.
해병대전우들은 개성이 강하여 개인적으로는 서로의 다툼이 많은 조직이다.
그러나 외부의 공격엔 한 덩어리가 되는 강한 단결력을 갖고 있는 불가사의한 집단이다.
해병대가 사수하여 지킨 대한민국이 한 치도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해병대가 연평도와 백령도를 잃으면 인천이 위협받고 서울이 위태로워진다.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에서 서해 강화도를 지배하는 나라가 한반도의 주축이 되어 왔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맥아더는 서해 최전방의 팔미도를 우선 점령한 후 등댓불을 밝히고서야 상륙을 감행할 수 있었다.
이 사실들은 서해가 한반도의 전략 요충지로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한반도의 요충지를 해병대가 지키고 있기에 5천만 국민들이 편히 잠들 수 있게 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기를 유념하자.
해병대여 영원하라! 필승! 【취재 : 신동설 발행인 / 사진 : 박흥배 보도국장】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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