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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전우회, 해병대 긍지로 초창기 시련 이겨내다

기사승인 2018.11.29  14: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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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시아해병대전우회 정유명 회장(해병 601)

갑작스럽게 취재 요청했음에도 이렇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외국에 적응하기까지의 과정을 말씀 부탁합니다.

말레이시아해병대전우회 정유명 회장(해병 601)

▲ 정유명 회장
저는 2010년에 대우건설 소속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와서는 실제로 쌍룡건설의 일을 더 많이 하였고 현재는 건설회사(JD건설)를 설립해서 현지 건설업체 자격으로 하청 수주를 받아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큰 장애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지인들의 생활습관이나 문화를 알지 못했던 겁니다.
마치 외딴 섬에 떨어져서 혼자 살고 있는 느낌이었죠.
자연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조국이라는 국가의식 등이 살아나더군요.
대한민국 국민이고 그중 제일 강한 해병대라는 긍지가 저를 지켜줬습니다.
야간에도 쉬지 않고 24시간 계속해 공사를 진행합니다.
하루 업무의 피로를 술로 보충하기도 하기 위해 ‘혼술’을 마시기 반복하다가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아 금주를 결심하고 실천한지 오늘로 293일이 되었습니다.
(웃으면서) 오늘은 무적해병신문 기자님이 오셨는데 꼭 한 잔 하겠습니다.
물론 내일부터 다시 금주는 시작되는 것을 전제하고 말입니다.

▲ 기자
제가 금주 기록을 깨뜨리는 원인이 되어 버렸군요. 너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까 공사장을 둘러보니 까마득한 빌딩 3동이 하늘을 찌르듯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던데, 저도 현역 장교로 근무할 때 안전사고가 항상 염려되었는데, 그런 점이 가장 염려가 크겠군요.

▲ 정유명 회장
제 회사 이름은 JD(JI DAM)인데요, ‘지혜롭고 담대하게’ 일을 해나가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 회사의 직원이 약 1,200명입니다. ‘건설회사’라고 하면 무식하게 밀어붙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는 건설이야 말로 가장 유기적인 업무 추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지요. 안전사고 예방 역시 지혜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제가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3명의 노동자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한 명은 바로 내 눈앞에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가 죽어갔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비통함이 엄습하더군요.
그런 사고들을 다시 살펴보니 꼭 단순한 실수나 부주의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더군요.
운이 좋아 수차례 지나쳤을 뿐, 언젠가는 반드시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들을 찾아 제거해 나가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역할이자 임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 기자
무사히 공사가 잘 진행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최판규 고문님은 무척 젊게 생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최판규
이곳에서 만나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기자는 저를 처음 보겠지만 저는 이미 동기생 밴드를 통해 무적해병신문과 해병TV 소식을 잘 알고 잘 보고 있습니다.
제가 젊게 생활하는 것 같다고요? 사람이 나이가 들어 활동성을 잃어버리면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것이고 활동적으로 생활하면 더욱 젊게 보이는 것이지요.
저는 지금도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을 지킴은 물론, 항상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단기하사로 입대해 30개월을 복무했는데 전후반기 교육이 끝나고 1사단 상륙장갑차대대에서 상륙훈련을 여러 차례 하다 보니 전역 날짜가 다가와 버리더군요.
저는 28년 간 홀로 해외 여러 곳을 다니면서 살아왔습니다.
최근 아내가 용인시의원에 당선되어 용인시 예산위원장이 되었어요.
그래서 용인시 해병대전우회에 지원금이 깎이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두 아들도 모두 해병대에 입대하여 전역했는데, 가족과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제가 올바른 모습이 아니었다면 아들들이 해병대를 지원했겠습니까?
해병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니까 지원했다는 생각이 들어 크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 회장도 말했다시피 외국에 나오게 되면 초창기에 거의 대부분이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언어와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는 텃세 등과 같이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면 현지에서 살아남는 것이고 이겨내지 못하면 고국으로 귀국하는 방법밖에 없겠지요.
이렇게 해외까지 찾아 취재하는 무적해병신문이 더욱 발전하길 바라며 우리 말레이시아전우회에 대한 소식을 잘 전파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고국에 있는 해병 150기 동기생들에게 안부 전하며 선후배 전우 여러분에게도 안부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말레이시아 취재 현장 모습. <좌로부터> 최판규 고문, 정유명 회장, 장하정 해외특파원, 김현태 회원.

■ 취재후기
말레이시아 전우회는 여러 명의 고문이 있었으나 제한된 취재 일정으로 만나지 못했음이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하며 취재를 마무리했다.
끝으로, 본 취재를 위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준 정유명 회장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한시도 현장을 비울 수 없었음에도 약 60km 거리의 공항까지 차를 몰고 나와 본 기자를 태워 주었고 운영하고 있는 콘도도 제공해주었다.
정 회장은 약 20채의 콘도 대여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고국의 해병대 가족이 신청하면 염가로 제공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정 회장의 하는 사업이 번창하길 바라며 在말레이시아 전우회원 여러분과 그 가정에 화복이 있으시길 기원한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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